[발언대] 외교관 금기사항도 모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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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7일자 중앙일보에 게재된 일본대사관 미치가미 히사시 참사관의 '한국이 진짜 바뀌어야 할 것들' 제하의 시론을 읽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비록 사견임을 전제로 했지만 그는 한국 국회를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해 386세대와 시민운동가.학자.언론인들을 싸잡아 비판했다.

한국의 가정 및 학교교육, 공중도덕, '한자가 통하지 않는 모순' 을 한국사회의 문제라고 비판했고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차별, 지역감정, '왜곡된 일본관' 에 대해서도 불평했다.

히사시 참사관은 '피를 흘리는 개혁' '배타적 유아독선은 쇠퇴와 패배의 길' 운운의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아마 외교관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주재국 내부를 신랄히 비판한 예는 드물 것이다. 지금 그의 '소감' 에 대한 진위여부를 놓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외교관은 임지의 국내문제에 대해서는 외교 관행상 공개적인 비판을 할 수 없다. 외교관에게는 파견국과 주재국간의 우호관계 증진이란 1차적 의무가 있다.

그래서 임지를 떠난 후에도 자신이 근무한 나라는 비판하지 않는다.

미치가미 참사관은 이러한 국제관행을 위배한 것이며, 외교관계에 대해 빈 협약이 규정한 '접수국의 국내문제에 대한 불간섭 의무' 를 위반한 것일 수도 있다.

외교관 출신의 아사이 모도후미 교수는 그의 저서 '일본 외교의 반성과 전환' 에서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중 아시아 제국(諸國)에 끼친 인적.물적.정신적 손해의 배후에는 명치유신 이래 일본정부가 일본인들에게 심어준 우월감과 멸시가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신랄한 비판이 혹시 이러한 우월감이 배경이 된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아사이교수는 이러한 우월감의 청산과 일본인들의 정신개조, 국제사회의 기본 룰의 준수를 일본외교의 출발점으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일본이 앞으로 아시아 국가들과 진정한 우호협력 관계를 증진하고 국제사회에서 지도적 국가의 하나로 부상하기를 원한다면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겸손으로 그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박동순 <前 주이스라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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