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혼전동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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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프랑스의 지성 자크 아탈리의 예측이 맞다면 결혼제도는 21세기 들어 심각한 변화를 겪게 될 전망이다.

그가 저술한 '21세기 사전' 은 처음부터 잠정적인 것으로 결혼을 정의한다.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성립하는 것이 결혼이란 얘기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는 흘러간 옛노래라는 것이다.

개인주의를 최고 가치로 신봉하는 21세기 인간은 감정도 하나의 소비상품으로 취급하게 된다고 아탈리는 말한다.

감정의 변화를 상품을 바꾸는 정도로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보다 훨씬 간편해질 이혼은 실패가 아닌 '자유행위' 로 자리잡게 될 것으로 그는 내다본다.

나아가 그는 '다중(多重)결혼' 사회의 도래를 예고하고 있다.

순결은 의무고 부정(不貞)은 잘못이라는 관념이 급속히 사라지고 여러 상대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권리가 인정되면서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가 제도적으로 자리잡게 될 거란 주장이다.

혼전 동거가 보편화한 프랑스에서는 결혼에 골인하는 1백명 중 87명이 동거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서도 새로 태어나는 아이 1백명 중 33명이 혼외(婚外)출산이다. 미국 5개 대도시 지역의 20대 미혼 남녀를 대상으로 집중 면담조사를 실시한 미 럿저스 대학 사회학 교수인 데이비드 포프노 박사는 '동거는 필수, 결혼은 선택' 이란 말로 요즘 젊은이들의 결혼관을 요약한다.

이혼 부담을 우려해 결혼을 최대한 늦추거나 기피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24와 7의 법칙' 이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롤 플레잉 게임 같은 데이트만으로는 서로의 습관.성격.성실성.능력 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결혼 전 일정기간동안 '하루 24시간 주(週) 7일' 을 꼬박 붙어 지내보는 준비과정이

필요하다는 게 요즘 미 신세대들의 결혼관이란 설명이다.

혼전 순결의 부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데다 동거경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토에서 가능한 얘기다.

우리나라에서도 20~30대 신세대 부부를 중심으로 협의이혼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협의이혼 건수가 95년 7만건에서 지난해에는 12만6천건으로 늘었다. 덜렁 결혼했다 파경을 맞은 부부들이 그만큼 많다.

아탈리의 예상대로 될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이혼은 당사자와 가족에게 큰 고통인 게 아직은 현실이다. 결혼은 사랑하는 남녀의 마지막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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