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일 청문회'로 뭘 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여야가 지금 벌이고 있는 인사청문회법 제정협상은 헌정사상 처음 도입된 제도의 기본틀을 짜는 중요한 작업이다.

그런데도 협상내용을 들여다 보면 지나치게 이한동(李漢東) 총리서리의 거취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기색이 엿보인다.

야당이 청문회법 제정과정에서 분풀이나 '괘씸죄' 를 의식해도 문제겠지만, 여당이 청문회 기간이나 질문범위 등에서 사사건건 李총리서리 보호에만 집착한다면 이 또한 법제정 취지에서 벗어난 것이다.

인사청문회는 총리 뿐 아니라 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감사원장 등 모두 23명에 이르는 고위공직자가 대상이다.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실질적 견제라는 취지는 물론 국민의 알권리 측면에서도 청문회는 겉치레로 진행되거나 면죄부를 주고마는 식이어선 안된다.

여권도 전임 정부의 숱한 인사실패 사례와 최근 박태준(朴泰俊)총리 사퇴파문을 교훈삼는다면 국회가 엄격한 검증절차를 마련하는 데 오히려 적극 협조해야 마땅하다.

그런 점에서 단 하루만 청문회를 진행하자는 민주당측 주장은 비록 협상용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기본 취지와는 동떨어진 발상이다.

고위공직 내정자라면 경력.재산.병역.전과는 물론 필요할 경우 사생활 일부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검증돼야 할 것이다.

관련자료와 증빙서류를 사전에 제출받는다 하더라도 이 모두를 하루만에 파헤치기는 불가능하다.

대상인사에 따라서는 관련 증인이나 참고인을 부를 필요가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민주당은 또 자기당 법안을 통해 청문회장에서의 질문을 사전에 서면질의한 것과 같은 내용으로 국한하고, 서면질의 내용도 특위위원장이 '검열' 할 수 있게 했다.

본령에 어긋나는 이런 조항은 서둘러 철회하는 것이 옳다.

이번에 제정될 청문회법은 특정 개인을 둘러싼 법이 아니다.

당장 7월 10일이면 인사청문회 대상인 대법관 6명의 임기가 끝나고, 9월에는 헌법재판소장 등의 임기가 만료된다.

여야는 총리서리 정국에서의 당리당략만 앞세울 게 아니라 중책을 맡을 공인에 대한 철저한 '종합검진' 장치를 마련한다는 자세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청문회장에서의 지나친 폭로전이나 인기발언, 사생활 침해를 걱정하지만 국민이 알아서 판단할 것인 만큼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는 검증안된 인사들이 뒤늦게 문제를 일으키곤 했던 부작용이 더 심각했다.

여야는 다음달 8일까지 청문회법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특위로 넘기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임시방편보다는 다음달 초의 16대 국회 개원 전에 서둘러 협상을 마무리지어 제대로 된 법을 통해 인사검증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