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현대의 남은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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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대 사태가 다시 터졌다. 현대투신 때문에 금융시장이 크게 충격을 받은 지 불과 3주여 만이다.

정부가 1천억원을 긴급 수혈키로 하는 한편 금감위원장이 "현대 자금사정에 근본적인 문제는 없다" 고 해명하고 나섰지만 시장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경영권 분쟁, 현대투신에 이은 또다른 충격으로 투자심리가 싸늘하게 식으면서 현대 계열사를 중심으로 주가는 다시 폭락했다.

현대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할 때 현대와 정부는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

이번 사태의 1차적 책임은 현대에 있다. 따라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현대의 변화다. 최근 사태의 근본 원인은 현대의 '신뢰성 상실' 에 있고, 그 시발점은 경영 투명성과 전근대적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일반의 의혹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몇년간 현대는 대북 사업과 기아 인수 등 공격적인 경영으로 사세를 확장해 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경영 투명성과 오너 중심 체제의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의 불신을 샀다.

현대는 이달 초 현대투신 경영 정상화를 위해 1천억원의 사재(私財)출자와 1조7천억원 상당의 담보 제공을 약속했다. 정상적이라면 사정이 나아져야 했다.

하지만 현대건설 등 일부 계열사의 자금사정은 되레 나빠졌다. 시장과 투자자들이 믿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점 현대가 깊이 생각할 일이다.

이제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 속히 시장.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가시적 구조조정 계획을 내놓고 차질없이 시행하는 것뿐이다. 만의 하나 또다시 미봉책을 찾는다면 그 결과는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을 현대는 명심해야 한다.

이번 사태는 정부에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본다. 현대의 자금난에 대한 우려는 갑자기 불거진 게 아니다.

그렇다면 주거래 은행 등을 통해 꾸준히 상황을 점검, 미리 대처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정부는 계속 뒷북만 치면서 일을 더 꼬이게 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책이 나오자 주가가 더 폭락한 것은 시장이 정부 말을 안 믿는다는 방증이다. 한편으론 아무리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지만 경제장관이 공개적으로 특정인에 대해 "그룹경영에서 손을 떼라" 는 것은 오너의 '황제식 경영'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다.

이로 인해 외국인의 눈에 한국은 여전히 극단적인 관치(官治)경제 국가로 비칠 경우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우리 경제는 가뜩이나 극히 불안한 상황이다. 이런 판에 현대 문제가 실제 이상으로 증폭돼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경우 그 결과는 현대는 물론 한국 경제 전체의 불행이 된다. 시간이 없다.

우선 현대가 신뢰 회복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정부도 원칙에 충실한 방법으로 사태 해결에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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