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서도 미녀 로비스트 스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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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무기거래와 정치인, 그리고 미녀 로비스트-.

최근 린다 김 사건이 국내 정.관계를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미녀 로비스트가 연루된 스캔들이 선진국에서도 있어 왔다.

프랑스에선 기업체의 여성 로비스트가 장관에게 접근했다가 사랑에 빠진 경우가 있었고, 미국에서는 법안 마련 과정에서 미녀 로비스트가 핵심 정치인과 관련됐으며, 독일에서는 군수업체 사장이 여성 정치인과 염문을 뿌렸다는 스캔들이 폭로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들을 알아본다.

<프랑스>

"엘프 회사가 평생연금을 준다는 좋은 조건으로 나를 고용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목적을 숨기면서 한 남자와 강렬한 관계를 유지하기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

이 글은 모델 출신으로 프랑스 최대 석유화학그룹 엘프 아키텐의 로비스트로 일했던 크리스틴 드비에 종쿠르(52)란 여인이 지난 1998년 쓴 자서전 내용의 일부다.

드비에 종쿠르는 '공화국의 창녀' 라는 제목의 이 자서전을 내면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정부에서 외무장관을 지냈고 98년 당시 헌법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랑 뒤마(78)와 자신의 성관계를 폭로, 프랑스 정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프랑스의 대중주간지 파리마치는 당시 이 책의 내용을 발췌해 소개하고 해변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포옹하고 있는 장면 등 두 사람의 불륜을 보도했다.

미녀 로비스트 드비에 종쿠르와 프랑스 정계의 실력자 뒤마의 스캔들은 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엘프사는 프랑스제 프리깃함 6척을 대만에 판매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사사건건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뒤마가 엘프사의 이러한 계획에 반대하고 나서자 묘안을 낸 것이 미인계였다. 드비에 종쿠르는 바로 엘프사가 고용한 미녀 로비스트였다.

그녀는 뒤마에게 접근한 뒤 무려 3조원에 이르는 거래를 성사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녀는 그 대가로 엘프사로부터 약 1백50억원의 커미션을 챙겼다. 뒤마도 그녀의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를 통해 1억여원의 사례금을 받았다. 이 혐의로 뒤마는 조사위원회에 회부된 뒤 위원장직을 사임했다.

이 사건은 정계 실력자, 미녀 로비스트, 무기 거래, 돈세탁, 비밀계좌, 미인계 등 세상의 이목을 끌만한 요소를 두루 갖춘 스캔들의 전형으로 기록되고 있다.

<미국>

댄 퀘일 전 미 부통령도 81년 여성 로비스트와의 추문으로 두고두고 정치적 곤경을 겪었다.

당시 인디애나주 출신 공화당 하원의원이었던 퀘일은 동료 하원의원들과 함께 폴라 파킨스라는 미모의 로비스트와 플로리다로 골프여행을 떠나 함께 주말을 보냈다. 파킨스는 한 보험회사의 부탁으로 보험사에 불리한 법안을 저지하라는 임무를 맡았다.

그러나 이 일은 곧 언론에 포착돼 세간에 알려졌다. 당사자들은 "성적 접촉은 없었다" 고 주장했으나 퀘일은 이듬해 하원의원 낙선이라는 유권자의 심판을 받았다.

이 염문으로 유명세를 탄 파킨스는 이후 거액을 받고 플레이보이지에 자신의 누드를 공개해 퀘일을 더욱 난처하게 했다. 지난해 퀘일이 대선 출마를 추진했을 때도 이 사건이 다시 거론되는 등 그림자처럼 그를 따라다니고 있다.

지난 95년 켄 밀러 공화당 하원의원은 한 여성 로비스트에게 "짧은 치마를 입고 다녀라" "내가 추진 중인 법안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면 호텔로 오라" 는 등의 말을 해 국회 윤리위원회에 회부돼 징계를 받기도 했다.

앨런 스탠지랜드 공화당 하원의원은 여성 로비스트와의 추문으로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경우. 그는 86, 87년 정부예산에서 결재하는 신용카드로 여성 로비스트에게 수십차례 장거리 전화를 걸었고, 몇년 뒤인 90년 이 사실이 드러나자 "전화는 했지만 연애는 안했다" 고 주장했다. 그해 그는 낙선했다.

<독일>

91년 당시 기민당 정부가 군수업체 티센사로부터 약 6억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지난해말 제기됐고 이 돈이 헬무트 콜 전 총리의 비밀계좌로 흘러들어간 사실이 드러났다. 이 사건으로 콜은 사법처리 위기에 몰렸고 볼프강 쇼이블레 기민당 당수도 올해 초 당수직을 사임하는 등 독일 정계는 엄청난 파문에 휘말려 있다. 현 집권 사민당 고위층도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여성인 브리기테 바우마이스터 전 기민당 재정담당이 티센사의 위르겐 마스만 전 사장과 성관계를 가져왔다는 일간지의 폭로도 터져나와 스캔들의 강도를 한층 높였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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