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 신문만평은 글 없는 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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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신문에 실리는 만평은 글 없는 사설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만평은 사회상에 대한 신문사의 시각과 철학을 반영한다.

그러한 까닭에 만평의 역할은 어떤 일의 급소를 찔러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소위 '촌철살인 (寸鐵殺人)' 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비판이라고 하겠다.

만평은 사회상을 해학을 곁들여 단순화해 전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고 또한 공분(公憤)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만평은 신문 보는 재미를 북돋우는 조미료일 뿐만 아니라 저널리즘의 필수 요소다.

이러한 만평을 통해 독자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제 (agenda)가 무엇인지를 비판적 시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동시에 시의성 있는 대화거리를 제공받기도 한다.

만평은 특히 정치적 영역에서 그 진가를 발휘해 왔다. 만평은 정치인이나 정치권에 대한 공격이나 조소(嘲笑)의 효과적인 무기 역할을 해 왔다.

만평은 정치적 영역에서 정권에 아첨하지 않는 인물묘사를 내세워 위정자를 고발하기도 하고, 복잡한 문제들을 단순한 은유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기도 하며, 그리고 특별히 유식하거나 정치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조차 쉽게 정치적 사안에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능력으로 인해 기성 정치인들에게는 마치 '벌의 침' 처럼 여겨져 왔다.

물론 이러한 정치적 만평의 표현이 때로는 여타의 개인권들과의 다툼의 대상이 되어 왔으며 왜곡된 만평과 만평작가를 제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성공적인 정치만평은 전통적인 전달방식이나 범주를 뛰어넘는 감성적인 충격에 호소하는 방법을 통해 그 목적을 달성했다.

만평의 은유나 패러디, 그리고 자유로운 발상은 독자들에게 속시원한 무엇을 전달할 수 있다. 글로 전달하기 힘든 정치적인 현상들을 이미지를 통해 전달한다. 이러한 점에서 만평은 여타 뉴스 기사들보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신문에 나오는 만평은 어떠한가. 지난해에 있었던 시사만화 및 만평을 그리는 화백들의 한 모임에서 참여자들은 한국의 만평은 단순화를 뛰어넘은 무리한 연결, 정치 집착적 과장, 빈곤한 표정묘사 등이 문제라는 자성(自省)이 있었다.

또한 만평이 단지 구색 갖추기식의 풍자물로만 전락하는 듯한 경향이 있는데 작가들이 균형을 잃거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독자들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를 바탕으로 대표적 신문만평인 중앙일보의 '김상택의 만화세상' 을 살펴보자. 여타의 신문들에서도 보이는 비슷한 현상이기는 하지만 최근 중앙일보의 만평(4월 1~29일자)은 그 내용이 너무 정치적인 영역에 집중해 있다.

총선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여러 다른 사회.경제적 이슈들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만평이 너무 많이 나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만평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상식적인 일반독자라면 만평이 정치현상을 꼭 집어서 비판하기보다는 마치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듯한 분위기를 다분히 풍긴다는 사실을 쉽게 인지할 수 있다.

그런데 특정인이나 특정의 논리를 비판하기보다 지지하는 만평은 오히려 실패로 돌아가기 쉽다는 것이 이전의 연구들을 통해 지적된 바 있다.

정치적 만평은 독자들에게 지속적인 인식의 방향을 설정하기보다는 정치적 관행에 대한 '아하, 이거구나' 하는 비판적 자각을 제공해야 한다.

정치적 만평은 풍자나 과장과 같은 형식을 빌리지 않고서는 그 핵심적 전달이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양식을 통해 독자들이 스스로 만평의 의미를 파악하도록 해야 한다. 이 때 독자들이 어떠한 식으로 봐주기를 바라는 의도가 최대한 드러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평이 특정 인물이나 논리를 옹호하는 듯한 내용을 싣게 되면 이는 독자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정치적 만평으로서의 본질을 상실하는 것이다. 만평은 이를 경계해야 한다.

이재진 <한양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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