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심술’이란, 영국인 5명 탄 요트 나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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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란에 억류돼 있는 영국인 5명 중 4명의 모습. 인터넷 인맥관리 사이트 ‘페이스북’에 올라 있는 사진이다. 왼쪽부터 샘 어셔, 올리버 스미스, 루크 포터, 올리버 영.

이란이 자국 인근에서 요트 항해를 하던 영국인들을 체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란과 서방 세계의 갈등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더 타임스 등에 따르면 영국 외교부는 1일 자국민 5명이 지난달 25일부터 이란에 억류 중이라고 밝혔다. 외교부는 발표문을 통해 “이들이 탄 경기용 요트가 바레인에서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로 향하는 길에 실수로 항로를 벗어나 이란 영해로 들어간 것 같다”며 “그들이 이란에서 안전하게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가족들에게 이를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데이비드 밀리밴드 영국 외무장관은 “당국자들이 사건을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 테헤란의 이란 당국과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억류 중인 영국인들은 ‘바레인 왕국(Kingdom of Bahrain)’이라는 이름의 약 30m 길이의 요트에 타고 있었다. 20·30대 청년인 이들은 지난달 26일 시작한 두바이~무스카트(오만의 수도) 해안 레이스에 참가할 계획이었다.

BBC방송은 외무부가 이 사건을 조속히 해결하기 위해 은밀히 이란과 접촉해 오다 협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억류 사실을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2007년 3월 이란 해군은 이라크와 이란 접경 해역에서 영국 군함을 나포해 배에 타고 있던 해병대원 등 15명을 억류한 바 있다. 당시 이란은 이 배가 자국 영해를 침범했다고 주장했고, 영국은 공해상이었다고 반박했다. 15명은 13일 만에 풀려났다. 2004년 6월에도 영국 군인 8명이 탄 영국 군함이 이란과 이라크 사이 해역에서 이란 해군에 붙잡혔다. 이들은 이란 영해에 불법으로 들어갔음을 인정해 수일 만에 석방됐다.

이번 사건은 미국·영국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이 유엔 제재 가능성을 거론하며 이란에 핵 개발 포기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라 처리 결과가 주목된다. 이란 정부는 지난달 29일 10개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추가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히며 국제사회의 압박에 강하게 반발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다음 날 “새로운 제재를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외국인 억류를 국제정치적으로 활용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30년 전인 1979년 11월 4일 이란 대학생 300명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의 담을 넘어가 대사관 직원과 가족 등 미국인 90명을 인질로 잡았다. 이들은 이슬람 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난 뒤 미국으로 도피한 무하마드 리자 샤 팔레비 전 이란 국왕의 송환을 요구했다. 여성과 흑인 등 일부 인질은 순차적으로 풀려났지만 52명은 계속 억류됐다. 미국은 이듬해 4월 인질 구출 작전을 펼쳤으나 헬기와 수송기의 충돌로 8명이 희생되는 결과만 가져왔다. 인질들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린 81년 1월 20일에 모두 석방됐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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