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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꽃’ 맞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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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흉부외과 의사를 한 지 벌써 20년째다. 남들은 많이 힘들지 않느냐고 위로 반 걱정 반의 말을 건네지만 별반 힘든 줄 모르고 지내온 세월이다. 좋다는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라는데, 많은 의사가 기피하는 흉부외과 의사를 좋아서 하고 있으니 사람마다 천직이 따로 있는 모양이다.

‘의사 중의 의사’ ‘의사의 꽃’이라고 한다면 20여 년 전만 해도 단연 외과의사였다. “칼잡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늘 전공의 지망 순위 맨 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랬던 외과가 지금은 기피 대상 일순위로 꼽힌다. 그중에서도 흉부외과는 전공의들이 가장 기피하는 진료과로 전락했다. 2~3mm 혈관을 5~6배 확대경을 통해 하나하나 봉합할 때마다 등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예민하고, 모든 수술이 생명과 직결되는 흉부외과. 수술시간이 길어 굶기를 밥 먹듯 해야 하고, 수술 후에도 중환자실에서 당직을 해야 하니 궂은일 하기 싫어 하는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할 리 없다. 그래선지 올해 대학병원 흉부외과의 전공의 지원율은 27.3%에 불과했다. “죽어가는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진짜 의사는 흉부외과 의사”라며 목에 힘주던 시절이 이제 옛일이 됐으니 격세지감 그 자체다.

흉부외과에서 보람 있었던 분야 중 하나는 그래도 심장이식이 아닌가 싶다. 지금이야 심장이식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과 전문의가 많아져 뉴스거리도 못 되지만, 1990년대만 해도 이 수술은 TV방송 뉴스에 크게 보도될 정도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지방에서 뇌사자의 심장을 적출해 헬리콥터로 이송해서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환자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하기까지의 과정은 감동 넘치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지금까지 수많은 환자에게 심장이식 수술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가는 다른 사람의 장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이 수술로 한 생명을 살릴 수는 있지만 또 다른 생명의 희생 없이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외경심이 절로 드는 이유다.

‘뉴 하트’ ‘하얀 거탑’ 등 TV 드라마에서 소개돼 반짝 관심을 끌긴 했지만 흉부외과는 여전히 비인기 진료과목이다. 이러다간 외국에서 의사들을 수입해 심장수술을 받아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심장수술은 세계적 수준인데도 이 길을 함께 갈 후배들이 너무 적어 아쉽고 걱정스럽다.

의사라는 직업은 세상의 직업 중에서 보기 드물게 어렵고 힘든 직업이다. 그중에서도 흉부외과 의사는 특별한 용기와 자신감, 사명감 없이는 하기 어려운 분야다.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환자들에게 생명을 되돌려주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래도 이 길이 행복한 것은 돈으로는 살 수도 느껴볼 수도 없는 큰 보람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젊은 의사 지망생이 관심을 가지고 이 분야를 들여다봐 주기를 희망해 본다.

박국양 가천의대길병원 흉부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