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디셀러 다시보기] 구리 료헤이 '우동 한 그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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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발간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10위권 안에 든다면 스테디셀러 중의 스테디셀러라 할 만하다.

소설집 '우동 한 그릇' (구리 료헤이 지음.청조사.6천원). 1989년 초판이 나온 이 책은 현재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순위 7위를 달리고 있다.

출판사측에 따르면 해마다 평균 5만부 이상 주문이 들어온다고 한다.

'10년 흥행' 의 비결은 무엇일까.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이라는 선전 문구는 이 책에서 그대로 적용된다.

바로 감동과 희망이다.

흔한 말이지만 힘들 때 이 만큼 절실한 것도 없다.

'우동 한 그릇' 은 힘겹고 팍팍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포근히 녹여주는, 부작용 없는 안정제 역할을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시대에 기업들의 단체 주문이 잇따르며 인기를 누렸다는 사실도 이를 시사해준다.

이야기는 짤막하다.

섣달 그믐밤 우동가게에 한 여인이 두 아이를 데리고 찾아오는 것으로 이 미담은 시작된다.

"저…1인분만…주문해도 괜찮을까요?" 라며 어렵사리 말을 꺼낸 여인에게 주인 부부는 1인분에 우동 반덩어리를 더 풀어 내놓는다.

해마다 똑같은 날 똑같은 시간에 세 모자는 이 곳을 찾아 우동 한 그릇을 먹으며 가난에 찌들었지만 용기를 잃지 말자는 다짐을 한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인가 모자의 발길이 끊긴다.

주인 부부는 이들이 앉았던 자리를 지정석으로 만들어 섣달 그믐밤이면 우동 한 그릇을 놓아둔다.

14년이 흘러 가게를 다시 찾은 모자는 이번엔 우동 3인분을 주문한다.

열심히 살자는 다부진 각오 덕분에 두 아이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우동집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함께 수록된 '마지막 손님' 도 아름다운 심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우동 한 그릇' 과 비슷하다.

병든 어머니를 위해 먼 길을 달려온 손님에게 정성스럽게 과자를 만들어주고 나중에 장례식까지 참석한다는 내용이다.

이 책의 성공은 우리 사회가 미담을 아쉬워할 만큼 각박해졌다는 증거로도 볼 수 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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