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국적 허용하기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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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그동안 복수국적은 뜨거운 감자와 같았다.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부정적 여론 때문에 번번이 도입이 무산됐다. 2005년과 2007년에도 논의가 있었지만 일부 복수국적자의 병역기피·특례입학·사회보장 혜택 등이 거론되면서 법안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그러나 사회환경이 변하면서 국적법 개정 작업에 탄력이 붙게 됐다. 해외 거주 기회가 많아지면서 외국에서 태어나 이중국적을 갖게 된 국민이 늘었다. 농촌지역에선 외국인 배우자와 결혼한 다문화 가정이 급증했다. 외국인 배우자의 숫자는 2002년 3만4710명에서 올 6월 말 현재 12만6155명으로 네 배 정도 늘었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게 됐다. 2002~2007년 국적 포기자가 14만8194명인데 비해 귀화자·국적 취득자는 5만6297명에 불과했다. 이 기간 동안 9만1897명의 인구가 순유출된 것이다. 고급 인력의 해외 유출도 문제였다. 우수 인재가 국내로 돌아오지 않고 해외에 머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또 국적 선택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아무런 사전·사후 통지절차 없이 국적을 박탈하는 현행 국적법에 대해 인권침해 논란도 제기됐다. 복수국적자를 우리 국민에서 배제하려는 게 후진적이고 편협하다는 여론이 점차 지지를 받게 된 것이다. 석동현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장은 “ 원정출산 등 극히 일부 경우를 갖고 복수국적 논의를 금기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강조했다.

국적법 개정안은 지난해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가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적·이민 정책을 구상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법무부는 지난 5월 우수 외국인 인재와 해외 입양인이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대해 미래기획위원회가 저출산 대책으로 접근할 것을 요구하면서 법무부안은 일단 보류됐다. 결혼이민자·국내 장기거주 외국인 등 사회적 소수자도 포함하자는 의견에 따라 복수국적 허용 대상을 크게 늘리는 방향으로 새로운 개정안이 마련된 것이다. 국적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65세 이상의 해외동포가 영주귀국해 우리 국적을 회복할 경우 복수국적이 허용된다. 국내로 영주귀국을 원하는 상당수 중국·러시아 동포는 혜택을 보게 된다. 새 개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중국적은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는 이유로 복수국적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학계에선 환영의 목소리가 높다. 엄격한 단일 국적주의에서 벗어나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국도 동참했다는 것이다. 연세대 이철우(법학) 교수는 “이번 개정안은 이민자 등 사회 소수계층을 우리 국민으로 처우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미국 등 선진국 국적을 취득하려는 원정 출산이 증가하는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 외국 국적 불이행 서약이 제대로 지켜질 것인지도 미지수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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