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지금 왜 '퓨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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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금 왜 퓨전인가 '음식점 간판에 퓨전이라는 말이 나붙기 시작했다.

영어의 fusion을 한글로 표기한 것으로 융합이라는 뜻이다.

우리 말로 번역해도 이렇게 어렵고 생소한 말이 어째서 철학 강의실이나 과학 실험실도 아닌 식당 간판에 붙게 됐는가.

그러나 밥에다 우유나 콜라를 말아먹는 요즘 아이들의 식성을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퓨전이란 바로 피자와 빈대떡을 합쳐놓은 것처럼 서양요리와 한국요리를 융합해 놓은 메뉴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음식만이 아니라 퓨전재즈에서 퓨전아트에 이르기까지 퓨전을 접두어로 하는 말들이 곳곳에 깔려 있다.

그리고 그것이 뜻밖에도 21세기를 나타내는 키워드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우리가 지금까지 근대를 추구하면서 살아온 키워드는 융합이 아니라 그 반대말인 분별이었다.

사랑.에로스는 융합으로서 분별을 잃게 한다.

그러므로 물불 모른다는 말은 분별없음을 나타낸다.

분별이라는 말은 한자 말 그대로 갈라서(分) 별(別)개로 만드는 일이다.

일본말에서는 숫제 안다는 것을 와카루(分)라고 한다.

그래서 산업주의에서 시작한 서구 근대주의에서는 모든 것을 양항 대립체계로 갈라놓고 별개의 것으로 떼어놓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경제.문학.사상 등 어느 하나를 놓고 보아도 이 분별의 의식이 반영돼 있지 않은 것이 없다.

경제에서는 베버의 청교도적인 자본주의관과 좀바르트의 쾌락적인 소비의 자본주의가 대립한다.

남성 대 여성, 생산 대 소비, 금욕 대 쾌락, 그리고 인간대 자연의 대립과 분할이 바로 자본주의를 움직여온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핵분열과 같은 것이어서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키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방사능 물질을 낳기도 한다.

서구의 이 양항대립의 분별에 반기를 든 것이 바로 서구 미술계에서 반짝했던 오리엔탈리즘이다.

그들은 동양미술에서 이항대립을 넘어선 중간 항-자기모순까지를 합치는 융합의 힘을 발견했던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시대 인터넷과 같은 사이버 세계로 들어오면서 서양사람들은 점점 이 융합의 힘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됐다.

인터넷은 밀실의 미니세계인데 그 안으로 들어가면 글로벌한 세계가 벌어진다.

개인과 집단밀실과 세계의 모순이 서로 융합돼 있는 공간이다.

디지털 기술은 아날로그에서는 따로 분리돼 있었던 것들을 하나로 융합시킨다.

그래서 문자와 동영상과 같은 시각정보와 말이나 음악과 같은 음성정보를 하나로 통합해 이른바 멀티미디어를 만들어 낸다.

그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별개였던 교육과 놀이를 합쳐 에듀테인먼트(에듀케이션과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가 되게 하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합쳐 프로슈머 (프로듀서와 컨슈머의 합성어)를 탄생시키기도 한다.

핵분열이 아니라 핵융합의 발상이다.

20세기가 분리해 통치하는 식민주의의 '디바이디드 앤드 폴리시' 의 물리적인 세기였다면 21세기는 갈라져 있던 것을 융합해 시너지 효과를 이루는 화학적인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원융회통(圓融會通)의 철학을 만든 원효(元曉)대사만이 아니라 한국인들은 융합의 천재들이었다.

탑 하나를 세워도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어우르는 힘, 그리고 음식을 만들어도 무엇과 먹어도 잘 어울리는 김치를 만들어 낸 것이다.

물과 불은 서로 분별.대립하는 것이지만 그 사이에 가마솥을 걸어 놓으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는 조화를 이룬다.

밥은 아무 맛도 없다.

다른 음식과 함께 먹어야 비로소 그 맛이 나온다.

퓨전요리를 따로 만들 게 있는가.

김치와 밥, 한국요리 그 자체가 퓨전 음식이다.

그래서 21세기를 한국의 세기라고 하는가.

이어령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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