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국회도 ‘4대 강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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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예산 전쟁이 시작됐다. 12일 국회가 상임위원회별 본격 예산 심의에 돌입하면서다. ‘4대 강 살리기 사업’이 착공된 데다 세종시 수정 논란이 불붙은 상황이어서 2010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은 어느 해보다도 뜨거울 조짐이다.

최대 쟁점은 역시 ‘4대 강 살리기’ 사업 관련 예산 8조5333억원(국회 예산정책처 분석)이다. 민주당은 일단 심의에 임하기로 했지만 한나라당이 4대 강 예산을 밀어붙인다면 정상적인 심의 진행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의 이강래 원내대표는 11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부는 낙동강에 2조 몇 천억, 영산강에 몇 천억 하는 식으로 총액만 제시하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사업을 어떻게 하겠다는 자료를 일절 내지 않고 있다”며 “그런 상태에서는 예산 심의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도 “4대 강 사업 추진 과정에서 국회의 예산·결산 심의의결권을 침해한 것은 대통령 탄핵 사유”(박주선 최고위원)라는 등의 강경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도입과 맞물린 한국장학재단 출연금(4286억원),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건립(97억원) 등 정부의 역점사업도 민주당은 ‘문제 예산’으로 분류하고 있다. 정책위 관계자는 “각종 특수 활동비 삭감 문제도 쟁점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도 갈수록 입장이 강경해지고 있다. 정몽준 대표는 11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헌법상 12월 2일까지 (예산안 처리를) 마무리하게 돼 있는데 매번 헌법 위반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제도 개선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의 4대 강 사업 예산 공격에 대해선 “4대 강 사업은 오히려 3년이라는 공사 기간을 조금이라도 단축시켰으면 한다”(안상수 원내대표)고 되받아 쳤다.

여당 지도부의 강경 모드엔 야권의 본격적 공세에 앞선 방어적 성격이 짙다. 안 원내대표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년도 예산안 심의가 크리스마스 이전에만 되면 좋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11일에도 국토해양위·환경노동위의 심의 일정이 야당의 반발로 확정되지 않는 등 난항이 계속되자 보다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한나라당은 예산안에 대한 대국민 홍보도 강화하기로 했다.

정 대표는 이날 라디오 연설에서 “당정협의를 통해 내년 복지 예산 규모를 81조원으로 책정했다”며 “카드수수료 인하 등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민생정책을 조속히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조윤선 대변인도 “눈에 불을 켜고 예산 낭비를 살피겠지만 모든 예산을 4대 강으로 묶어 무조건 반대하는 야권의 포퓰리즘적인 행태는 강력히 비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4대 강 사업 지반 조사 없이 착공”=11일 대정부 질문은 마지막까지 4대 강 사업 때문에 뜨거웠다. 민주당 조경태 의원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을 상대로 “공사를 착공하면서 지하 암반층에 대한 지질 조사를 안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 장관은 “조사를 충분히 했다고 들었다”고 답했지만 조 의원은 “오늘 4대 강 살리기 추진본부 서기관이 한 말”이라며 공방을 벌였다.

조 의원은 “지반 조사를 안 하고 착공하는 건 토목공학의 ABC도 모르는 것이며 (공사 중에) 암반층이 나오면 공사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이 “지반 조사를 하지 않은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고 다그치자 정 장관은 “동의한다”고 답했다.

임장혁·권호·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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