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후반 중진작가들 왕성한 작품활동…이호철·박완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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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작가란 정년이 없는 직업. 올해 노벨상 수상작가 귄터 그라스가 72세의 고령에도 신작을 발표하는 데 비해 작가의 조로(早老)에 대한 비판이 많은 우리 문학계에서 60대 후반 중진작가들이 중견 못지 않은 창작욕으로 올가을 문학계에 다양한 화제를 던지고 있다.

▶ 40년전 단편 새로 손 본 이호철씨

함경남도 원산 출신으로 6.25초기 인민군에 동원돼 국군포로로 붙잡혔다가 풀려난 뒤 단신 월남, 지난 반세기 동안 분단.통일 문제에 천착해온 소설가 이호철(67)씨가 꼭 40년전 발표했던 단편 '탈각(脫殼)' 을 새로 다듬어 이번주 출간될 계간 '한국문학' 에 발표한다.

고향에 진주했던 국군 장교와 결혼, 오손도손 살다가 뒤늦게 유부남인 것이 밝혀지자 남편을 떠나 딸과 함께 살고있는 주인공 동연이 고향선배로 의지해온 형석과 결혼을 결심하는 과정을 통해 실향민들 내면의 갈등을 그린 이 작품은 본래 59년 2월호 '사상계' 에 발표되었던 것.

55년 '문학예술' 지에 '탈향' 을 발표하며 등단한 작가의 초기작인 이 작품은 그의 문학적 원류를 확인하는 동시에 곧 고향에 돌아가리란 기대로 불안정한 생활을 고집하는 당시 실향민들의 정서를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초기작인데다 원체 오래전에 쓰여져서 부족한 점이 많다고 느껴왔는데, 내 소설을 주제로한 요즘 석.박사 논문들에서 자꾸 다뤄지는 것을 보면서 더 肩?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면서 "장편은 아직 엄두를 못내지만, 단편은 몇 편 더 손을 볼 참" 이라고 밝혔다.

'이산타령, 친족타령' ( '라쁠륨' 가을호), '사람들 속내 천야만야' ( '창작과비평' 겨울호)등 신작 단편을 최근에도 꾸준히 발표하면서 40년전 작품을 다시 손보는 작가의 모습은 "작품 하나 발표한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일" 이란 그의 말 그대로. 이렇게 다듬어진 작품들은 고희(古稀)에 맞춰 후배문인들이 준비중인 '이호철 문학선집' 에 실릴 예정이다.

▶ 새 장편 연재 시작한 박완서씨

지난 겨울 펴낸 창작집 '너무도 쓸쓸한 당신' 으로 30대 여성작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베스트셀러 수위를 다투고, 평단으로부터도 갈채를 받은 작가 박완서(68)씨가 5년만에 신작 장편 연재를 시작했다.

이번 겨울호 '실천문학' 에 첫회 3백매가 실린 '아주 오래된 농담' 이 그것. 4회 분재 형식으로, 작가의 등단 30주년인 내년 여름 완성될 예정인 이 소설은 40대 내과의사 심영빈, 영빈의 초등학교 시절 첫사랑격인 여성 유현금, 당시 현금을 두고서나 공부로나 경쟁자였던 산부인과 의사 한광, 이 세 사람의 과거를 요약하면서 시작해 이혼한 현금과 우연히 만난 영빈이 불륜에 빠져드는 현재형의 사건으로 이어진다.

"이층집이었다. 여름이면 이층 베란다를 받치고 있는 기둥을 타고 능소화가 극성맞게 기어올라가 난간을 온통 노을 빛깔의 꽃으로 뒤덮었다. 그 꽃은 지나치게 대담하고, 눈부시게 요염하여 쨍쨍한 여름날에 그 집 앞을 지날 때는 괜히 슬퍼지려고 했다. " 현금을 추억하는 영빈의 내면을 그린 문장에서 엿보이는 인물들의 지난날을 빼곡하게 형상화한 작가의 문체에는 세월에 녹슬지 않은 감수성이 번득인다.

언뜻 연애소설같지만 취재에 상당한 공을 들였을, 대학병원 의사생활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영빈의 어린 기억에 남아있는 '훌륭한 의사' 와 '돈많이 버는 의사' 의 대립은 이 소설의 주제가 간단치 않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자본주의에 대해서" 란 게 연재를 시작하는 작가의 변. '너무도 쓸쓸한 당신' 이 오는 19일 만해문학상을 받는 것에 때맞춰 '박완서 중.단편전집' (문학동네)도 출간된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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