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돈 쓰는 문화’의 격조와 깊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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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모든 게 돈이라고들 한다. 오나가나 경제, 경기를 외치는 것도 다 돈 얘기라 한다. 소송 사건도 겉으로는 명예라지만 본질은 돈인 경우가 많다. 교통사고·음주운전 시비도 알고 보면 합의금이 목적이다. 증권의 선물 거래가 유난히 많은 것도 결국 사행심이라 한다. 뉴타운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갑자기 집들을 짓고, 떠난 세입자의 자리에 뒤늦게 들어오는 것 역시 보상금이 목적이란다. 데모도 돈 없으면 못 한다고 한다. 회사 돈이면 고급 술집에 모범택시만 탄단다. 자기 돈이라면 아마 그렇게 비싼 곳에서 밥 먹고 술 마시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가진 자에 대한 유난스러운 거부감과 비난도 한편으론 부러움과 시기라고 한다. 별로 부럽지도, 갖고 싶지도 않다면 관심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가진 자가 양보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자기보다 덜 가진 사람에게 양보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자기보다 더 가진 사람으로부터 양보받길 원할 뿐. 이런 것들이 실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다들 관심 많은 돈이 외려 부끄러울 때도 있다. 없는 사람도 돈이 별로 부럽지 않을 때가 있는 것이다. ‘돈을 버는 건 기술이지만 쓰는 건 예술’이라고 한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것을 촌스럽고 유치한 곳에 써 댄다면 그 돈은 서글프다. 으리으리한 건물이 비가 새면 허름한 건물에 물 새는 것보다 더 측은하다. 디자인 서울이라고 멋을 부린 도시에서 오나가나 하수구 냄새에 숨을 참아 가며 다녀야 한다면, 한껏 멋 부린 외관이 부끄러워진다. 외려 빈촌의 하수 냄새보다 더 남세스럽다. 화장실들이 많이 달라진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깨끗한 게 받쳐 줘야 한다. 얼룩진 세면대에 바닥은 질척해 시커먼 발자국이 지저분하면, 그 화장실에 걸어 놓은 그림은 쑥스럽다. 청결하고 뽀송한 화장실이 먼저다. 그렇지도 못하면서 그림 먼저 거는 건 오버다.

외국에 나가 보면 일본 식당은 깨끗하고 비싼 값을 받는데 한국 식당은 맛이 있는데도 뭔가 정돈이 안 되고 허름한 느낌을 줘 서운할 때가 있다. 상점도 진열된 상품이 정돈되고 먼지 없이 깔끔한 곳이 있는 반면 물건의 종류는 많으나 진열이라기보다는 잔뜩 쌓아 두고 구석진 곳엔 먼지가 가득한 데다, 그것도 모자라 길가에 어지러이 내놓는 곳이 있다. 미관에서부터 신뢰가 갈린다.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의 기량도 최고지만 의상이나 매너도 세련된 것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아무리 보는 눈이 다르더라도, 교외에 세워진 국적 불명의 성(城) 모양을 한 모텔과 웨딩홀을 보면, 과연 누가 설계하고 허가했을까 싶지 않은가. 기기묘묘 참 특이하기도 하고 주변 건물들과의 조화는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 미국 연수 기간에 방문해 본 현지인들 집은 소박하지만 각자의 스타일이 있고, 장식이 있었다. 반면 교포들 집은 대단히 크지만 보이는 건 거실의 대형 텔레비전과 소파였던 기억이 있다. 100만원이 있을 때 50만원짜리 집을 사서 나머지 50만원으로는 집을 가꾸는 것과 100만원짜리 집부터 사고 보는 것의 차이인 듯했다. 이참에 우리네 살림살이를 돌아보면, 두드러진 것은 집 안의 역사나 스토리를 간직한 장식보다는 넘치는 최신 가전제품·가재도구가 전부일 때가 있다. 집 공간에 비해 사들여 놓은 것이 너무 많다.

사실, 아름다움의 기본은 청결이다. 소박함이다. 질서다. 그리고 조화다. 잠수교 옆의 조경시설은 깨끗하고 잘해 놓았다. 하지만 장마철엔 꼭 한 차례씩 물에 잠기는 곳에 그렇게 많은 조경시설은 좀 낭비로 보인다. 분수 뿜는 다리도 과잉인 듯싶다. 그런데 앞으로 수중 오페라하우스 건립 계획까지 있다고 한다. 돈은 아껴서 꼭 필요한 곳부터 쓰는 게 아름다운데.

펜스로 가리고 기다린 서울 광화문광장의 새 모습이 과연 어떨까 궁금했었다. 사람이 오갈 수 있는 곳으로 변한다는 기대와 함께 교통 혼잡한 곳에 또 어떤 넘침이 기다리고 있을지 염려가 교차했었다. 차양을 걷어 내니 한 공간에 거대한 꽃밭과 분수와 조형물이 가득하다. 넘치는 인파로 결국 며칠 못 가 스테인리스 철책도 들어섰다. 게다가 겨울이면 꽃밭을 걷어 내고 보리를 심거나 스케이트장을 만든단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아우성은 여기에선 남의 나라 이야기인가 보다. 양쪽에 멋진 나무들을 가지런히 심고 소박한 벤치 몇 개만 두는 여백은 그리도 심심했을까. 뭔가 꽉 차고 잔뜩 있어야만 멋이라고 느끼는 걸까. 돈을 쓰는 건 정말 격조 높은 예술임을 다시 확인한다.

김영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