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편파적 방송토론 용납못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MBC-TV가 신설한 '정운영의 100분 토론' 첫 생방송이 토론주제의 한쪽 당사자를 배제한 채 진행된 것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중앙일보 탄압 사태와 언론개혁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에서 이미 1주일 전에 토론자로 확정돼 방송사가 공식적으로 발표까지 한 중앙일보측 '언론장악음모분쇄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그제 생방송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 갑자기 출연을 거부당한 것이다.

그 결과 토론은 일방적으로 진행됐고, 시청자들은 그나마 중앙일보측 인사가 토론 막바지에 전화로 외압실태와 불참경위를 설명하고 항의하지 않았더라면 사태 진상의 일단(一端)조차 짐작하지 못할 뻔했다.

우리는 이같은 방송 파행(跛行)이 단순히 본지(本紙)의 '언론탄압' 과 관련된 사안이라는 차원을 넘어 공기(公器)인 방송의 공정성.형평성.신뢰성과 관련된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판단한다.

더구나 이런 편파적이고 작위적(作爲的)인 파행이 방송 제작진이 아닌 경영진이나 외부의 입김 때문이라면 이 역시 언론자유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거 정권에서 그토록 문제가 됐던 방송에 대한 외압.통제 망령이 정권이 바뀐 뒤에도 여전히 판친다면 국민의 눈과 귀는 어디를 믿고 의지해야 하는가.

안그래도 SBS에서는 신설된 토론 프로그램인 '오늘과 내일' 이 지난 19일 첫 방송에서 본지 사태를 다루려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최근 방송사 노조들이 권력에 의한 외압의혹을 문제삼은 것도 한두 건이 아니다. MBC의 경우 '100분 토론' 을 신설하면서 '토론문화의 활성화를 지향' 하기 위해 '가급적 찬.반 양론이 분명한 인사들을 패널로 출연시키겠다' 고 했는데, 찬.반 중 한쪽만 일방적으로 따돌린 자리에서 무슨 토론문화가 형성되고 시청자의 건전한 판단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사실 방송사들이 잇따라 시사토론 프로그램을 신설한 데 대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공정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있어 왔다.

과거 정권의 행태를 상기할 때 공정성 여부에 대해 미리부터 걱정이 표출됐던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사태가 빚어진 것은 모처럼 생긴 시사토론 프로들이 앞으로 정치적 외압의 단골표적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주기에 충분하다.

MBC측은 이번 생방송 파행이 경영진의 판단에 따른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 이상의 압력 실체가 있는지에 대한 국민들의 의혹도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아도 토론문화가 빈약한 우리 풍토에서 공중파 방송마저 이런 편파성을 보이고 외압 의혹을 일으켜서야 되겠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