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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방송, 학습기회 확대에 큰 기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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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500여년 전 구텐베르크가 각고의 노력 끝에 금속활자를 이용한 근대 활판인쇄술을 발명했다. 새로운 발명품을 보고 모든 사람이 경탄의 박수를 보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이런 내용의 편지를 써 보낸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존경하는 구텐베르크씨, 당신의 발명품은 놀라운 것입니다만…, 기껏해야 그것으로 성경을 인쇄하는 일 말고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비슷한 이야기로, 이제는 없으면 불편함을 느끼는 e-메일이 1990년대 초반에 등장했을 때 편리한 팩스가 있는데 e-메일을 사용할 이유가 무엇인지 반문했던 사람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초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이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게 마련인 것 같다.

5개월 전 온 국민의 지대한 관심 속에 EBS 수능강의가 시작됐다.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국민적 요구는 크고, 과외 수요를 단기에 없애기 어려운 상황에서 선택한 것이 e-러닝 지원체제를 이용한 무료 과외인 EBS 수능강의였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새로운 사업에 많은 사람이 기대를 걸고 조용히 지켜보고 있지만, 시행 초기부터 지금까지 비판의 소리도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EBS 수능강의,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시도입니다만…, 그것으로 인해 줄어든 사교육비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더구나 그것이 교육적 효과가 있기나 한지…"라는 식이다.

8월 23일 현재 EBS 수능강의 인터넷 서비스의 경우 108만여명의 회원이 가입해 하루 평균 8만여명이 VOD나 다운로드를 통해 학습하고 있다. 방송을 통한 학습자 수까지 감안한다면 이보다 많은 학생이 EBS 수능강의를 이용해 보충학습의 기회를 갖고 있을 것이다. EBS 수능강의 사이트가 온라인 학습사이트 중에서 이용자 수 1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흔히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EBS 수능강의를 이용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비록 만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지만, EBS 수능강의는 정보기술(IT) 강국으로서의 우수한 인프라와 세계 5위의 e-러닝 준비도(e-learning readiness)를 갖춘 우리나라의 정보화 여건을 적극 활용해 학생들의 학습 선택권과 학습 기회를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그 정책적 의의가 크다. 이와 함께 사교육비 부담, 지역.계층 간 교육격차 발생 등 고액과외의 폐해에 맞서 교육부가 정면으로 대응했다는 측면에서 대통령주재 토론회에서 EBS 수능강의가 성공한 정책사례로 소개된 것이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 EBS 수능강의가 모든 국민에게 100% 만족을 주지 못하고 있으며, 많은 부분 개선이 필요한 것 또한 사실이다. 단조로운 강의 방식, 300K 동영상 서비스의 화질 문제, 교재 가격에 대한 불만, EBS 수능강의와 수능시험 연계에 따른 문제 등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제들이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령 정부가 운영하는 인터넷 강의다 보니 공영방송으로서의 품위를 지키지 않을 수 없고, 7차 교육과정에 충실하려다 보니 사설 학습사이트의 강의보다 다소 흥미가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도 학생들의 학습동기를 유발하는 다양한 강의방식과 프로그램 제작 기법 도입으로 보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EBS 수능강의의 질을 끊임없이 높여도 한 가지 오해가 풀리지 않는다면 불만의 목소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EBS 수능강의 하나로 사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EBS 수능강의 하나로 사교육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주장이다. 교육부는 EBS 수능강의에 대해 만병통치약이라기보다 일종의 해열제로서 단기 처방전의 역할을 주로 주문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까지 교육부는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국민의 소리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고, 내부적으로도 수차례 학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정책 개선에 반영하고자 했다. 언젠가는 EBS 수능강의가 이제는 없으면 불편을 느끼는 e-메일처럼 학생들에게 친숙하고 필요한 존재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배성근(교육부 교육정보화기획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