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경제 착시현상…성적 과대평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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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경기가 정말 좋아지는건가' .

경기가 회복됐다는 정부 발표를 최근 잇따라 접하면서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표 경기와 체감(體感)경기가 차이가 나는 이유는 "워낙 죽을 쑨 지난해에 비해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다 보니 전체 경기가 나아진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 이란 해석이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6일 '최근 경제동향과 지표의 착시(錯視)현상' 이란 보고서를 통해 "경제 지표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바람에 경기.고용.금리.투자 등 다방면에서 경제상황이 실제보다 과대 평가되고 있다" 고 지적했다.

특히 반도체 등 덩치 큰 일부 업종의 호황과 주식 등에서 돈을 번 계층의 소비심리 회복 때문에 마치 다른 업종까지 되살아난 것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는 것. 보고서는 "기업 실적도 땅이나 계열사를 판 결과 나아진 것일 뿐 장사로 번 영업 이익은 줄어드는 등 불안한 상황" 이라고 주장했다. 주식도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들이 재미를 보는 속에서 종합주가지수가 상승했지만 많은 개인투자자들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물가 불안이 가중되면서 서민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홍순영 수석연구원은 "이런 이유 때문에 지표만 놓고 경제정책을 결정하면 잘못될 가능성이 크다" 며 "특히 금융시장 불안을 감안할 때 긴축정책은 시기상조" 라고 말했다.

◇ 경제규모는 아직 97년 상반기 수준〓올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예상보다 높은 7.3%. 하지만 이는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으로 경제 기반이 낮아졌기 때문에 올 성장률이 높아보이는 것이지 절대 수준은 멀었다는 것. 상반기 국내총생산(GDP)은 2백4조원으로 97년 상반기(2백1조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연구소 관계자는 "기업이 재고를 지난해 크게 줄였다가 올해 다시 늘렸는데, 이 부분이 투자로 잡히면서 상반기 성장률을 5.1%포인트나 끌어올렸다" 고 분석했다. 재고투자를 제외한 성장률은 2.2%에 불과하다는 것.

◇ 부진한 설비투자〓상반기 설비투자는 21조9천억원으로 97년의 3분의2 수준. 이는 94년(22조9천억원)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보고서는 "기업 투자심리가 회복됐다고 보기 어려우며 기술도입 역시 둔화됐다" 며 "투자가 늘지 않으면 성장 기반이 훼손될 수도 있다" 고 우려했다.

◇ 반도체 등 일부만 호황〓올 1~8월 생산은 21% 증가했지만 자동차(59%).반도체(47%).통신기기(42%) 등 일부만 호황이다. 특히 다른 업종에 긍정적 파급효과를 별로 미치지 않는 반도체가 제조업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로 95년(8%)보다 세배나 늘었다.

보고서는 "반도체가 성장률을 3%포인트 정도 끌어올렸다" 며 "자칫 반도체가 어려워지면 경기가 급락할 소지가 있다" 고 지적했다.

◇ 영업이익 되레 감소〓12월 결산 상장 제조업체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13조2천7백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2조5천5백억원(16%) 줄었다.

물론 경상이익은 지난해보다 17배나 많은 8조1천억원에 달했지만, 이는 계열사나 부동산 등 자산 매각에 따른 특별이익 덕이지 실제 장사로 번 돈은 되레 줄어든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 체감 금리는 여전히 높다〓회사채 수익률이 낮아지다 보니 실세금리가 한자릿수로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금리지표가 되는 회사채 수익률은 전체의 7%에 불과한 A+등급 이상 우량기업이 조달하는 금리여서, 나머지 대다수 기업은 한자릿수 금리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 구직(求職) 포기로 낮아진 실업률〓지난 8월 실업률이 5.7%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예 구직을 포기해 실업률에 잡히지 않는 사람이 6월 38만명에서 8월 62만명으로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이 역시 허수다. 구직 포기자를 포함한 실업률은 8.3%에 이른다는 것.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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