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염력이 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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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본선 32강전>
○ 황이중 7단 ● 허영호 7단

제5보(52~60)=전보의 마지막 수인 흑▲는 소위 ‘밝힌 수’였다. 지금은 ‘실리’보다는 ‘두터움’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중앙에서 돌들이 얽혀 있고 전투가 임박한 상황이기에 이곳에 힘을 보태야 했다. 허영호 7단도 그 정도는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곳이 A인지 어딘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고 큰 승부인지라 자칫 공배를 둘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모를 때는 확실한 수, 즉 집을 챙기는 수를 두면 크게 틀리지는 않는다는 생각에 그의 손길은 ▲ 쪽으로 향하고 말았던 것이다.

황이중 7단은 곧바로 52로 삭감해 왔고 흑의 형태는 점점 엷어졌다. 엷으면 치고 싶다. 형세도 좋지 않은 지금 어딘가를 끊고 싶다. 폐부를 찌르는 한 수를 찾아 황이중이 장고에 빠져들었다. 이때 묘한 일이 일어났다. 대국자의 텔레파시라 할까. 허영호의 머릿속으로 문득 상대가 56에 붙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곳에만 붙여달라고 속으로 주문했는데 정말 붙여왔다. 신기했다.”(허영호 7단)

‘참고도1’ 백1이 좋은 곳이었다. 이것으로 아직 긴 승부였다. 58은 일종의 맥점으로(참고도2는 싱겁다) 젊잖은 기풍의 황이중이 필사의 강수를 던진 것인데 허영호는 바로 이 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참 묘한 일이다. 황이중은 상대가 반발할 수 없다고 믿었지만 허영호는 즉각 59로 끊고 나섰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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