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인재 몰고온 '얼렁뚱땅' 건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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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살인자들!" 지진의 잔해더미 앞에서 터키는 슬픔보다 분노로 떨었다.

터키의 유력 일간지들은 일제히 건축회사와 관련당국의 부실과 부패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번 지진은 20세기 최대의 규모로 어쩔 수 없는 천재 (天災) 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세기 최대의 인재 (人災) 임에도 틀림없다.

터키의 건축법은 엄격하다.

지진이 잦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못지 않다.

하지만 건축현장의 감리.감독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 그래서 엄격한 건축법은 사실상 있으나 마나다.

터키의 건축기술은 세계에서도 수준급이다.

터키의 건설업자들은 모스크바 등지에 현대적 건물을 수없이 세워온 터키의 자랑스런 '수출주역' 들이다.

그러나 국내 공사는 엉망이다.

'바다모래로 지은 빌딩, 함량 미달의 철근 콘크리트, 뇌물로 얼룩진 건축관련 공무원들…. ' 우리에게도 너무나 친숙한 단어들이다.

터키 최대도시 이스탄불에는 '게제콘두스' 라는 이름의 집들이 있다.

'밤에 만들어졌다' 라는 뜻을 가진 이 집들은 말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뚝딱 지어진 것들이다.

감독 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터키의 극빈층. 이들은 이번 지진의 최대 피해자들이다.

94년 성수대교 붕괴, 95년 삼풍백화점 참사, 98년 지리산계곡 야영객 사망.경기권 홍수로 이어진 우리의 인재 (人災) 도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지난달 폭우로 야기된 엄청난 침수사태도 또 다시 인재시비를 불러일으켰다.

"아무도 과거의 쓰라린 경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다. " 터키 셀주크대학 건축학과 알리 시난 교수의 일갈 (一喝) 을 인터넷으로 접하는 순간 절로 얼굴이 뜨거워졌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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