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컨설팅 ‘꿈은 이루어진다’ ] 서울 성남중 2 이형관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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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질과 흥미는 항상 일치할까. 내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같지 않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이번 주인공은 어려서부터 뱀을 무척 좋아해 파충류 박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이형관(14·성남중 2)군이다. 어머니 박순원(46·서울 동작구)씨는 “형관이가 어학 등 문과에 더 소질이 있는 것 같아 고민”이라며 진로적성검사를 요청했다.

최은혜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생물보다 어문·의학 계열에 소질”

이형관군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부터 ‘왠지 모르게’ 파충류를 좋아하게 됐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파충류에 관한 책이라면 안 읽어본 것이 없다. 덕분에 자타가 공인하는 파충류 박사가 됐다. 생물을 좋아하는 형관이는 현재 과학고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 박순원씨는 그런 아들이 걱정스럽다. 옆에서 지켜본 형관이는 물리·화학 등 다른 과학 교과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데다 언어에 더 소질을 보였기 때문이다. 형관이가 어려서 우연히 접하게 된 파충류 분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박씨는 “검사를 통해 아이의 적성을 객관적으로 알게 되면 아이가 꿈을 찾아가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와 형관이는 마음누리 학습클리닉 정찬호(신경정신과 전문의) 박사를 찾았다. 문·이과 적성 및 소질을 파악하기 위해 지능검사·영재판별검사·적성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결과 형관이는 지능이 상위 2.3% 수준으로 매우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지능을 언어성과 동작성으로 구분했을 때 각각 상위 1%와 17.5% 수준으로 편차가 컸다. 정 박사는 “언어성이란 얼마나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고, 동작성은 지식을 통해 추론하고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측면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주로 문과 성향인 학생들은 언어성 지수가, 이과 성향일 땐 동작성 지수가 높다는 것. 형관이는 언어이해 및 주의집중 점수가 특히 높았다. 꾸준히 책상 앞에 앉아 지식을 습득하는 학습 스타일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형관이는 또 뇌파·심전도·맥파 등을 측정해 적성을 알아보는 검사에서 좌뇌가 발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선 검사에서 언어성이 높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결과였다. 소질 있는 교과목은 영어·수학·국어·사회·과학 순으로 드러났다. 적성 분야로는 의학 부분이 두드러졌다. 검사 결과만 보면 형관이가 생물보다 어문·의학 계열에 더 소질이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형관이는 여전히 파충류 연구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정 박사는 “진로 선택 시 학생의 흥미 존중과 다양한 직업 세계에 대한 정보 제공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교수·연구원 등 학자적 기질 강해

이형관군이 파충류 전문가 심재한 박사의 연구실을 찾았다. 심 박사가 채집한 쌍두사를 이군이 신기한 듯 들여다보고 있다. [최명헌 기자]

형관이는 한국가이던스 한근영 심리학습연구원을 만나 또 한 번 컨설팅을 받았다. MLST 학습전략 검사와 홀랜드(Holland) 진로탐색 검사, 학습흥미검사 등이 이어졌다.

검사 결과를 분석해보니 형관이는 학습에 대한 외적 동기가 강한 것으로 보였다. 알아가는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에 비해 시험에서 부정적 평가를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편이라는 뜻이다. 한 연구원은 “형관이가 자기효능감·자신감도 다소 부족한 상태”라며 “과학고 입시 준비 과정에서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진로탐색 결과는 탐구형·사회형으로 나타났다. 교수·연구원 등 학자적 기질이 강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 연구원은 “적성검사 결과와 학생의 흥미가 맞지 않는 경우 자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럴 땐 우선 기본적인 진로·적성 검사와 상담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검사 결과에 따른 후보 직업군과 진로 분야를 놓고 정보를 탐색해봐야 한다. 관련 전문가를 찾아 직접 만나거나 e-메일을 통해 궁금증을 해결할 수도 있다. 한 연구원은 “단순히 학과나 직업의 이름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며 “충분히 정보를 수집한 뒤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롤 모델 심재한 박사 만나 힘을 얻다

형관이는 검사 결과를 통해 적성에 맞는 것으로 나타난 직업 10개를 골라 간략한 조사를 해보기로 했다. 앞으로 3~4개의 직업으로 압축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볼 계획이다. 또 파충류 연구라는 진로를 위해서는 어떤 준비와 공부를 해야 하는지, 전망은 어떤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형관이는 초등 저학년 때부터 자신의 롤 모델(role model)이었던 심재한 박사를 만났다.

국내에서 독보적인 ‘파충류 박사’로 인정받고 있는 심 박사의 집 안에는 온갖 사진과 박제들이 곳곳에 가득했다. 가장 큰 방 앞에는 ‘한국양서파충류생태연구소’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이곳에서 심 박사는 조교들과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쓴다고 했다. 심 박사는 형관이에게 대뜸 “책상 위에 있는 유리병을 가져오라”고 했다. 조심스레 가져간 병 속에는 살아있는 새끼 살모사가 들어있었다. 사랑스러운 애완동물 다루듯 뱀을 꺼낸 심 박사는 형관이에게도 건넸다. 형관이도 무서워하는 기색 없이 뱀을 만지고 관찰했다.

심 박사는 “사람들이 뱀을 무서워하고 징그러워하지만 생태계에서는 아주 중요한 ‘허리’ 역할을 한다”며 “왜 뱀을 연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식을 강하게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는 파충류 연구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우선 생물학 관련 전공을 이수한 후 해외에서 더 공부를 하는 방법이 있다. 심 박사는 일본의 교토대학이 특히 양서·파충류 연구로 유명하다고 알려줬다.

심 박사는 대부분의 연구 활동을 산·하천 등 야외에서 한다. 산 속에서 텐트를 치고 몇 날 며칠 머무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러다 겨울이 되면 동면을 취하듯 연구소에 틀어박혀 논문을 쓴다. 그의 연구소에는 전국 곳곳의 산에서 채집한 표본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베란다에 놓인 냉장고 안에는 음식 대신 냉동 보관하는 뱀·자라·악어알 등이 가득했다. 심 박사가 그중 하나를 꺼내 보여주자 형관이는 대번에 ‘능구렁이’임을 알아맞혔다.

헤어지기 전 심 박사는 미개척 분야를 연구하는 일의 어려움과 지도교수로부터 가르침을 받던 일에 대해 들려줬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오랜 기간 파충류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해온 형관이가 기특해 앞으로도 도움을 주고 싶다”며 “계속 공부해서 내 뒤를 이었으면 한다”고 격려했다. 형관이는 “박사님이 실제로 연구를 어떻게 하는지 알고 싶었는데 궁금증이 많이 해소됐다”며 “더 열심히 해서 유학을 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형관군의 진로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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