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칼럼] 새 밀레니엄과 70대 기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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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내년 4월의 16대 총선거를 앞두고 정국이 벌써부터 급류를 타고 있다.

공동정권 창출의 대전제였던 올해안 내각제 개헌은 '어느날 갑자기' 유보됐다.

그와 동시에 제기됐던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합당을 주축으로 한 신당창당론은 자민련쪽의 제동으로 엉거주춤한 상태지만 국민회의의 신당 행보엔 변함이 없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과 김종필 (金鍾泌) 총리의 개헌합의 위약 (違約) 을 빌미로 김영삼 (金泳三) 전 대통령마저 정치복귀를 선언했다.

이렇게 최근 정치의 큰 흐름은 모두 3金과 직결돼 있다.

우연히 (?) 도 때맞춰 한나라당과 이회창 (李會昌) 총재에 대해서는 세풍 (稅風) 수사를 통한 목조르기가 강화되는 인상이다.

30년 전 국민들에게 신선한 희망으로 다가섰던 3金씨는 새로운 세기, 새 천년대 (밀레니엄)에도 여전히 자기들만 국민의 희망임을 자임 (自任) 하려 드는 것일까. 많은 국민들은 JP가 왜 연내개헌 카드를 그렇게 쉽게 버렸는지에 의문을 지니고 있다.

물론 내각제 개헌에 金대통령과 국민회의가 소극적이고 제1당인 한나라당이 반대하는한 개헌은 결국 안되는 것이다.

내각제 개헌을 이뤄내는 JP의 힘은 이렇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약속파기에 대응할 그의 힘은 공동정권을 깰 수 있을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그 힘을 쓰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약속 파기.거짓말의 책임까지 함께 둘러썼다.

당내 반발과 총선에서의 충청권 지지 하락 위험까지 무릅썼다.

왜 그랬을까. 나라의 안정과 장래를 위한 고뇌에 찬 결단이라는 그의 설명만으론 잘 수긍이 가지 않는다.

뭔가 DJP간에 장래에 대한 교감과 합의가 있지 않았을까. 국정을 이원집정제적으로 운영해 실질적 내각통할권을 지닌 강한 총리를 보장한다는 관측이 있다.

그러나 JP가 현실적으로 강한 정치력을 지속하기 위해 다음 총선 출마가 불가피하다면 총선 전에 총리직을 그만둬야 한다.

또 합당론이 제기됐을 땐 JP가 신당의 총재를 맡아 공천과 정치를 주도하게 될 것이란 얘기가 있었다.

지금은 합당론 자체가 꼬리를 내렸지만 합당이 된들 정치세력도 더 크고 현직 대통령인 명예총재를 제쳐두고 소수파 당총재가 공천권을 주도한다는 것이 정치역학상 가능한 일이겠는가.

이렇게 강한 총리론.신당총재론만으로는 JP의 행동이 잘 설명되지 않는다.

때문에 JP가 차기 (次期) 를 내다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원래 DJP합의의 핵심은 요컨대 金대통령의 임기 5년을 DJ와 JP가 반씩 나눈다는 것이었다.

JP가 그 반을 포기해 임기를 다 마칠 수 있게 됐다면 과연 DJ는 어떻게 보답해야겠는가.

현직이 차기를 보장한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지만 아무튼 DJ로선 JP에게 큰 빚을 다시 지게 된 것이다.

공교롭게도 DJP 약속파기를 빌미로 정치복귀를 선언한 YS에 대한 여권의 비판은 미지근하다.

어차피 국민에게 좋은 소리를 못 듣는 실패한 전직 대통령의 돌출행동을 건드렸다가 오히려 키워주기만 한다는 우려가 작용했을 지도 모른다.

게다가 YS의 행동은 야당진영의 분열을 초래하고 전직 대통령의 정치은퇴를 당연시해 온 일반 분위기를 흔드는 여권으로선 망외 (望外) 의 측면이 있다.

이러니 '후3金시대' 란 얘기가 속도를 더하게 된다.

그러나 딱하게도 3金은 모두 70대 노인들이다.

그중 가장 나이가 적다는 YS가 1927년생이니 우리 나이로 73세다.

이제 5개월이면 2000년대에 들어선다.

21세기와 새 밀레니엄은 정식으론 2001년부터지만 분위기상으론 2000년이면 이미 시작된다.

말이 21세기, 새 밀레니엄이지 그날이 그날인데 달라질 것이 뭐냐고 할지 모르나 실제로 큰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다.

올해말이 가까워오면서 온 세계의 언론매체가 21세기와 새 밀레니엄에 관한 온갖 특집으로 도배질을 하게 된다.

이런 분위기는 내년 내내 지속될 것이고, 이는 우리 국민에게도 지구 (地球) 적 변화에 현명하게 적응해야 산다는 강한 메시지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 집중적인 세뇌가 진행되는 가운데 치러질 내년 총선거는 과거와는 양상이 다를 공산이 크다.

역사를 뒤로 돌리긴 거의 불가능해질 것이다.

미래를 선도할 수 있다는 신뢰감과 이미지가 매우 중요한 시대가 된다.

어느 정당과 지도자가 이런 이미지를 선점하느냐에 총선결과가 크게 좌우될 것이다.

적어도 지역성이 약한 수도권에서는 특히 그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후3金' 의 '70대기수' 이미지는 어떤 작용을 하게 될까.

성병욱 본사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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