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기 왕위전 도전기 3국' 구사일생의 생존본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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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38기 왕위전 도전기 3국
[제4보 (61~81)]
黑.이창호 9단 白.이세돌 9단

조훈현9단은 15세 때 내기바둑을 둔 죄로 파문당한 일이 있다.

2단이던 조훈현은 아베 요시테루6단의 집요한 요청으로 장난삼아 내기바둑을 둬 6연승을 거두고 600엔을 땄다. 아베는 "훈현은 정말 무서운 놈이다"고 떠들고 다녔고, 이게 스승인 세고에9단의 귀에 들어가 당장 보따리를 싸들고 거리로 쫓겨났다. 나중에 용서받았지만 2주 동안 도쿄의 한 음식점에서 주방의 접시닦이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신간 '戰神 조훈현'중에서).

대성을 꿈꾸는 소년기사에게 내기바둑은 나쁘다고 한다. 정도를 걷기보다 꼼수 쪽으로 기웃거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년시절 아버지가 내기바둑으로 날린 재산을 내기바둑으로 되찾았던 사카다 에이오는 훗날 일본의 전설적인 일인자가 되었다. 내기바둑은 많이 접어주고 두니까 항상 위태롭다. 자연 잡초의 생명력이 몸에 배게 되는데 이것이 오히려 훗날의 위기 때마다 힘이 되었던 것이다.

이창호의 흑61에서 문득 내기바둑 전용의 치열한 생존본능이 느껴진다. 우변 수상전은 흑도 여섯수이고 백도 여섯수. 따라서 손을 뺄 여지는 없다. 하나 만약 후수를 잡아 백에게 63 자리를 막히는 날엔 중앙이 온통 백 천지로 변하고 바둑도 끝나게 된다.

그런데 61로 하나 젖혀두고 63으로 손을 돌리는 수가 있었다. 61로 1선을 젖혀두는 것 자체로 흑은 한수 늘어났던 것이다. 궁지에 몰려본 적이 많지 않고 내기바둑을 둬본 적도 없는 이창호이기에 61이라는 구사일생의 질긴 한 수가 더욱 오묘한 느낌을 준다.

우변은 백이 굳이 수를 낸다면 한 수 늘어진 패가 된다. 이세돌9단은 지금 배부른 처지라서 늘어진 패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그는 70의 손해도 마다하지 않고 빠른 속도로 좌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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