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병욱 칼럼] '안보 우선'보다 분명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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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 (對) 북한 포용정책, 이른바 햇볕정책에 대한 국제적 지지 확보는 김대중 (金大中) 정부의 외교정책에서 높은 우선순위를 점하고 있다.

이번 한.캐나다 정상회담을 포함해 金대통령이 취임이후 가진 수많은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이나 발표에 햇볕정책은 단골메뉴로 올라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 우방이었던 나라는 물론 북한의 우방이었던 중국.러시아.몽골 같은 나라들도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서는 직.간접적으로 이해나 지지를 표명했다.

햇볕정책과 그 수행과정에 대해 국내에서 상당한 우려와 비판이 있는 데 비해 외국에선 긍정적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선, 햇볕정책이 평화.화해.협력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까지 치른 한반도에서 한쪽이 단기적으로 좀 손해를 보더라도 화해와 협력을 추진하겠다는데 바깥에서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점에선 우리쪽이 국제적으로 명분을 얻고 있는 셈이다.

또 하나는 남북한 관계의 미묘한 상황을 밖에선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햇볕정책의 화해와 협력이란 명분을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남북한 상황에 정통한 나라나 전문가들 중에 원칙적인 지지를 하면서도 유보적인 견해를 표명하는 경우가 꽤 있다.

미국쪽에서 그런 얘기가 많이 나오고, 러시아의 티타렌코 극동문제연구소장 같은 사람은 지난 3월 열린 한.러포럼에서 "북한엔 남한이 독일식 통일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문제는 과연 북한이 남한의 그런 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 고 했다.

외교정책과 목표에 대해 국제적인 이해와 지지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노력은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정부의 국제적 PR는 일단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적 이해와 지지의 폭을 넓히는 것과 그것이 북한에 영향을 미쳐 정책으로서 효과를 내는 것은 별개문제다.

실제로 북한은 햇볕정책에 대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자기네 체제의 옷을 벗겨 흡수통일로 가려는 음모라고 주장한다.

지난 3일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있었던 제4차 한.몽포럼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5월말 한.몽정상회담후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바가반디 몽골대통령이 우리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 이해와 지지를 표명한 대목이 들어 있다.

이에 대해 북한측이 몽골쪽에 햇볕정책은 흡수통일하겠다는 것인데 그것을 지지할 수 있느냐고 강력히 항의해 상당히 곤욕을 치렀다는 것이다.

대사관을 철수시키겠다는 으름장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무바라크 이집트대통령의 방한과 金대통령의 몽골 방문에는 남북관계와 관련해 타국의 경우와는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북한과 각별한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두 나라가 남북한 평화중재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그래서 이번 한.몽포럼에서도 몽골의 남북한 평화중재역할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포용정책 지지에 대한 북한의 항의가 있어서인지 몽골 참가자들의 태도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중재역할에 대한 의욕은 있으나 결과에 대해선 별로 자신이 없어 보였다.

몽골 정부의 핵심적 위치에 있는 한 참가자는 몽골이 중재역할을 한다면 남북한 양쪽이 모두 그것을 바랄지, 중재대상은 무엇이 돼야 할지, 그로 인한 몽골쪽의 이익은 무엇인지 등을 물어볼 뿐 스스로의 견해는 밝히려 하지 않았다.

과연 무바라크나 바가반디 대통령이 94년 카터 전미대통령이 수행했던 남북한 평화중재자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지금같이 북한이 전혀 호응해오지 않는한 대북 포용정책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남북한의 평화이미지 경쟁에선 성과가 있겠지만 북한의 이미지가 바닥을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새삼 남북간 이미지 경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렇다면 이젠 포용정책의 기반이면서도 한때 소홀히 했던 '튼튼한 안보' 로 되돌아가야 한다.

외교의 중점도 포용정책 PR에서 미국 등 우방과의 긴밀한 대북공조로 옮겨져야 한다.

햇볕.포용정책의 정신은 좋더라도 그것이 교조화돼선 곤란하다.

서해에서 교전이 벌어졌는데도 금강산 관광객을 보내고, 차관급회담을 위해 비료지원을 계속하는 경직성이 왜 나타나는가.

차관급회담의 결렬과 관광객 억류사태를 당하고서야 겨우 포용정책의 우선순위는 안보중시로 조정됐다.

다행히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초점도 확고한 안보와 긴밀한 한.미 대북공조에 맞춰졌다고 한다.

햇볕정책이 힘을 얻기 위해서도 이 안보우선의 기조는 흔들림 없이 지속돼야 한다.

성병욱 본사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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