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클린턴의 레임덕 벌써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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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요즘 더욱 바빠졌다.

코소보사태를 일단락짓고 유럽순방에서 귀국하자마자 사회보장.의료개혁 등 굵직굵직한 국내 현안을 챙겨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전국 곳곳을 다니며 개혁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임기 종료까지 19개월. 아마도 미 역대대통령 중 임기 말에 클린턴만큼 의욕을 보인 대통령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클린턴의 외교참모들은 보스니아와 코소보사태에서 취한 대통령의 조치들을 '클린턴 독트린' 으로 이름붙이는 문제를 심각히 검토 중이다.

클린턴의 행적을 역사 속에 한층 돋보이게 하려는 노력이다.

클린턴의 부산한 행보와 참모들의 이같은 움직임 속엔 섹스스캔들의 추한 이미지도 씻고 임기 말 레임덕 현상을 최대한 막아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

그러나 이미 그의 레임덕 현상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우선 정부부처 주요관리들이 연이어 자리를 떠나고 있는데 후임자 모시기가 힘들다.

이임한 제임스 루빈 재무장관 자리는 래리 서머스 부장관을 임명, 쉽게 보충했다.

서머스가 있던 자리엔 고심 끝에 국무부 스튜어트 아이전스탯 차관을 가까스로 앉혔다.

그러자 이번엔 그의 후임찾기로 골머리를 앓았다.

거론된 인사마다 대부분 사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클린턴을 더욱 섭섭하게 만드는 것은 언론의 외면이다.

그동안 백악관을 취재했던 출입기자단 가운데 무게 있는 이들이 속속 자리를 뜨고 있다.

CNN의 울프 블리처나 존 킹 모두 이번 여름휴가를 마치면 백악관으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CBS나 NBC의 경우도 마찬가지. 지난달 클린턴의 코소보방문땐 다수의 출입기자들이 동반취재를 사양했다.

백악관 출입기자 중 일부는 상품가치 있는 조지 W 부시 주지사의 선거캠페인 취재에 동참하길 원하고 있고, 일부는 덜 바쁜 자리로 옮겨 백악관 경험을 책으로 엮어낼 계획이다.

조지 스테퍼노펄러스 전 백악관 비서관이나 래니 데이비스 전 법률고문 등 클린턴의 참모들이 잇따라 책을 출간, 대통령 임기 중에 그의 뒷얘기를 폭로하는 판이다.

출입기자들로서도 뒷북만 치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경제호황과 국내문제 개혁 등에 탁월한 업적을 기록하며 여전히 60%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클린턴. 그러나 흐르는 시간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여기저기서 물이 새기 시작했으니.

길정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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