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인도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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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화성 씨랜드 청소년 수련의 집 운영허가 과정에서 담당계장인 이장덕 (李長德.여) 씨가 업자의 협박과 상사의 압력에 맞서 공무원의 자세를 지키려고 애를 썼다는 보도는 이 사고로 허탈감과 분노에 빠진 이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

비록 강압을 견디다 못해 허가장에 도장을 찍고는 말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가 보여준 소신과 태도는 이 시대 공직자들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귀중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일선 민원부서에서 20년 동안 일했다면 공직사회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현실과 적절히 타협하기가 쉬운 법인데 가족의 안전에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비리에 저항한 그녀의 행동은 부패로 얼룩진 공직사회에 모범이 될 뿐만 아니라 아직도 우리 사회에 정의가 숨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李씨의 사례에서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부패상과 그 치유책이 동시에 담겨 있음을 본다.

잘못된 현실을 지적하고 바로잡으려고 애쓰는 공직상의 표본이 오히려 상사나 동료들로부터 '왕따' 를 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러나 "공직사회에도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고 한 그녀에게서 우리는 새삼 희망을 갖게 된다.

이런 희망은 화재현장에서 불길에 휩싸인 제자 23명을 구하고 목숨을 잃은 경기도 화성군 마두초등학교 김영재 교사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사랑스런 부인과 어린 두 딸보다 위험에 처한 제자들을 먼저 생각한 그의 책임감과 희생정신에는 옷깃이 여며진다.

누가 더 이상 우리 주변에 의인 (義人) 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사회가 온통 문제투성이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꿋꿋이 지탱되고 있는 것은 李계장과 金교사와 같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보여준 가능성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키는 것이다.

공직비리만 하더라도 외부 감시와 제재만으로는 바로잡는 데 한계가 있다.

공직사회에 李계장과 같은 사람들이 다수가 될 때 비로소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

그러려면 건강한 세포가 병든 세포를 극복할 수 있도록 조직문화를 개선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이 조직에 대항한다는 것은, 특히 그것이 비리와 관련된 것일 때 엄청난 고통과 시련이 뒤따르게 된다.

내부 고발에 대한 보호장치를 갖추고, 이를 장려하도록 인센티브제도도 도입할 만하다.

모범사례에 대한 적극적인 전파도 공직사회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건 안되고 저건 하지 말아라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는 공무원은 성공한다는 것을 공직자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 이상 참 공직자가 '왕따' 를 당하는 기현상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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