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에 더이상 양보 못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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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혹시나 하고 기다렸던 베이징 (北京) 남북 차관급 2차회담이 우려했던 대로 아무 성과도 없이 겉돌고 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북한측의 상식밖의 억지 때문이다.

그제 열린 회담에서 북한측은 남한이 지원하기로 한 비료 20만t중 잔여분 10만t 수송이 시작돼야 이산가족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서해 교전사태가 남한측의 '계획적인 도발' 이었다며 사죄.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하고, 시사잡지에 난 황장엽 (黃長燁) 씨 인터뷰 기사에 대해 우리 정부가 해명하라고 우겼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북한은 누가 할 요구를 입에 올리고 있는가.

우리 대표단이 이런 북한측의 억지에 대해 이런 식이라면 더 이상 회담을 할수 없다고 일단 철수통보를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산가족 문제에 성과가 있어야 비료를 추가 지원한다는 정부의 원칙은 확고하게 지켜져야 한다.

엉뚱한 문제를 내세워 회담을 결렬시키는 북한의 수법은 낯선 것이 아니다.

이번처럼 이산가족 문제를 다뤘던 89년의 남북적십자 실무회담도 북한이 임수경 (林秀卿).문익환 (文益煥) 씨 석방과 북한가극 공연을 전제조건으로 고집하는 바람에 무산됐다.

지난달 열린 남북 차관급 1차회담도 북한이 비료수송 지연과 서해사태를 문제삼은 탓에 지연됐고 결국 좌초하지 않았는가.

그제 차관급회담에 이어 어제 열린 판문점 장성급회담도 서해사태와 북방한계선에 대한 이견으로 소득 없이 끝난 것을 보면 북한은 적어도 지금은 현안을 대화로 풀어나갈 의지가 없어 보인다.

더욱이 북한은 지난달 3일 이산가족 문제를 우선적으로 협의하기로 남북합의문까지 만들고서도 이런 억지로만 나오고 있다.

이제 보면 북한의 관심은 오직 비료지원에만 있을 뿐 이산가족문제 해결에는 전혀 관심도 성의도 없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정부는 회담 자체에 매달리기보다는 한발짝 물러나 북한이 어떤 의도로 이러는지, 우리의 대북정책은 바로 서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주부 민영미 (閔泳美) 씨 억류사건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차관급회담에서마저 북한측의 이런 생트집을 접하고 많은 국민은 실망과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다.

북한의 행동이 이렇듯 무례하고 제멋대로인데도 "차관급회담이 잘 돼 장관.총리급 회담으로 격상될 가능성이 있다" 고 예단하는 경솔함은 이제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 없이는 비료지원도 없다는 원칙은 앞으로도 지켜야 하며, 금강산 관광도 주부억류에 대해 북한이 사과하고 확실한 재발방지책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서두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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