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 이후] '햇볕 살리기' DJ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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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대북 햇볕정책으로 고심하고 있다.

계속 하자니 야당과 여론의 비판이 만만찮고 그렇다고 중단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햇볕정책 원칙에 대한 지지는 확실한 만큼 북한이 가만히만 있어주면 문제가 별로 없겠지만 도발을 일삼으니 金대통령으로선 답답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金대통령은 대북 포용정책의 계속적 추진을 강조하고 나섰다.

여기서 그칠 수 없다는 의지가 아주 강하다.

정면돌파로 상황을 밀고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16일의 청와대 여야 총재회담에서도 이는 여실히 드러났다.

사실 햇볕정책은 상충되는 두 가지 개념을 묶어 놓은 것. 철저한 안보를 바탕으로 한 화해와 협력이 그렇다.

한 가지를 강조하다 보면 나머지 하나는 의미가 퇴색된다.

다만 그동안은 안보보다 화해 협력이 강조됐다.

그러는 와중에 서해 사태가 터졌고, 그러니까 야당의 비난이 거세지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답변논리는 아주 간단하다.

햇볕정책 자체가 철저한 안보를 전제로 한 것이란 설명이다.

사실 그동안의 화해 협력적 태도가 한반도 긴장완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평가도 있다.

햇볕정책 때문에 북한의 도발을 야기했다는 주장과는 정반대의 얘기다.

이렇듯 햇볕정책은 구조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북한의 변화인데 金대통령은 이를 의식, 최근 햇볕정책의 논리를 새롭게 가다듬고 있다.

햇볕정책의 기본정신이 한반도의 전쟁을 막자는 것이란 설명이 그것이다.

金대통령은 16일 여야 총재회담에서 이회창 (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의 햇볕정책 재고요청에 그런 식으로 대응했다.

즉 햇볕정책을 보다 상위의 가치로 재포장하는 것이다.

전쟁을 막기 위한 정책에 반대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터이고, 金대통령은 그렇게 야당의 공격을 비켜 가려하고 있다.

金대통령이 요즘 들어 '햇볕정책' 이란 표현보다 '대북 포용정책' 이란 표현을 즐겨 쓰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이 역시 햇볕정책을 포괄적 개념으로 승화시키려는 것이다.

金대통령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은 결국 북한의 변화여부에 성패가 달려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아직 결과를 예단하긴 이르다.

체제유지에 자신이 없는 북한으로서는 생존차원에서 화전 양면전략을 끊임없이 전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이 고비다.

金대통령은 비교적 낙관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4강의 지지가 이를 가능케 한다는 판단인 듯 싶다.

청와대가 서해 사태를 몰린 상황에 대한 일종의 마지막 시위로 보는 것도 이런데서 기인한다.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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