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방한계선은 지켜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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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오늘부터 유엔사와 북한군간의 장성급 회담이 열린다.

지난 8일간 벌어진 서해의 군사적 대치상황을 대화로 푸는 전기가 마련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장성급 회담 자체가 안고 있는 여러 복합적인 사정을 생각한다면 문제의 일단락이 아니라 지금부터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북한군의 '월선 (越線)' 자체가 치밀하게 계획된 행위였다면 장성급 회담 수락도 그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북의 계획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이번 장성급 회담은 북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면밀히 검토하고 그에 상응한 대응책을 세우는 한.미간 긴밀한 협조가 요청된다.

우선 북의 서해 도발은 여러 의도를 내포하고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이 기존의 북방한계선 (NLL) 을 분쟁대상으로 삼거나 무력화하자는데 그 뜻이 있으리라 짐작된다.

원래 서해 북방한계선은 53년 휴전협정 당시 점령지역과 서해 5개도서를 기준으로 해서 유엔사가 현재의 한계선을 그은 것이다.

북은 수시로 이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무력시위를 해왔다.

그후 92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시 해상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는 기존의 관할구역을 인정한다는 것이 남북간 합의의 유일한 근거다.

따라서 이번 서해 북한군의 도발은 분쟁의 소지를 재연시켜 이를 회담장으로 끌고 들어가 새로운 '판' 을 벌이겠다는 계획된 수순 (手順) 임을 알 수있다.

북한이 최근까지 받아들이지 않던 장성급 회담을 수락한 데는 또 다른 의도가 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북한측이 최근까지 계속 요구한 것이 장성급 회담 아닌 3자 군사공동기구다.

이 안은 유엔사를 배제하고 남북한군과 미군 3자가 직접 군사문제를 논의하자는 형식이다.

말인즉 그럴싸하지만 유엔사 배제로 정전협정 무효화와 주한 유엔사의 명분 희석을 노리면서 미군 주둔의 명분을 약화시키자는 덫이 숨겨져 있다.

우리는 장성급 회담이 북한의 이런 의도가 숨겨진 새로운 '판' 이 돼서는 안된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이번 장성급 회담에선 북방한계선을 분쟁화.무력화하는 북의 노림수에 흔들려서도 안되고 또 정전협정을 북.미간 평화협정으로 바꾸자는 북의 제안에 말려들어서도 안될 것이다.

현실적으로 봐서도 남북 서로가 12해리 영해를 주장할 경우 남북간 무력충돌은 피할 수가 없게 된다.

서해 긴장을 완화하는 방법은 현재의 한계선을 인정하면서 완충지역에 남북 공동어로를 합의하는 방식이 최선이다.

남북문제를 푸는 현실적 방안으로 남북기본합의서 이상의 다른 대안은 없다.

기존의 북방한계선은 국제법상의 실효성원칙이나 응고 (consolidation) 원칙에 따라 적법성을 지닌다.

적어도 남북당국간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절차나 과정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정전협정이나 북방한계선에 관한 어떤 논의도 회담장에서 이뤄져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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