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증가-양지와 음지] 중저가품에 햇빛들날 감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잔뜩 움츠렀던 소비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정말 그런가. '봄 바람' 이 솔솔 부는 게 사실이지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는 게 현장의 모습이다. 각 부문의 소비 실태를 점검한다.

◇ 신바람나는 백화점 = 서울 압구정동 H백화점 양복매장을 찾았던 회사원 P씨 (32) 씨는 전에 없던 일을 경험했다. 마음에 드는 옷을 보곤 잠시 다른 곳에 다녀왔더니 "팔렸다" 는 것. 이 매장 여직원은 "요즘은 이런 일이 흔하다" 고 말했다.

주요 백화점은 올들어 최고 60.5%의 신장률을 보일 정도로 뚜렷한 판매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롯데.신세계.현대.삼성플라자 등 9개 주요 백화점 43개 점포의 매출은 올들어 5월말 현재 3조8천6백9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6%나 늘었다. 특히 현대와 삼성플라자는 각각 60%를 웃돌고 있다.

◇ 승용차는 '큰 게' 좋다 = "일부 인기 차는 출고가 밀려 빨리 빼달라는 성화에 시달리고 있다. 작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한 자동차 대리점 관계자의 즐거운 비명이다.

올들어 5월말까지 승용차 내수 판매는 30만4천9백대로 41.8% 증가했다. 가장 큰 특징은 대형승용차 (그랜저.아카디아 등)가 지난해의 무려 세배가 넘는 2만7백여대나 팔린 것. 또 미니밴 (카니발.카스타) 과 지프형 승용차 등 다목적 레저용차량 (RV) 판매도 두배 이상 늘었다.

반면 지난해 불황기의 최대 히트작이던 경차의 인기는 주춤해 판매가 5.5% 줄었고, 소형차 (49.5%) 와 중형차 (28.6%) 도 상대적으로 신장율이 낮았다.

외제차 시장 분위기도 비슷하다. 올 1~5월 배기량 2천5백㏄급 미만 승용차 판매는 3백48대로 지난해보다 6.5% 감소한 반면 ▶2천5백~3천㏄급은 41.1% ▶3천㏄급 이상은 90.3%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해 가처분 소득이 급증한 상류층이 눈치 보느라 돈 쓰기를 꺼렸으나 최근 경기가 회복되면서 적극적으로 소비에 나서는 것 같다" 고 분석했다.

◇ 전자제품도 대형만 잘팔려 = LG전자 창원공장은 늘어나는 주문을 맞추기 위해 4월이후 매일 잔업을 하고 있으며 월 2회 휴일특근도 실시한다. LG전자의 국내 가전매출은 3월 1천2백억원, 4월 1천4백억원으로 국제통화기금 (IMF)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3월까지 LG전자가 판 TV는 18만8천대로 28%나 늘었다.

LG 관계자는 "이는 97년의 85% 수준이며 최근 추이를 보면 곧 완전 회복될 것 같다" 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양문 여닫이식 대형냉장고 '지펠' 은올들어 지난 3월까지 1만3천여대가 팔렸다. 삼성 프로젝션TV '파브' 도 올 1분기에 무려 9천2백대가 팔려 지난해는 물론 97년 동기의 두배를 웃돌았다.

◇ 골프용품과 보석류 수입도 급증 = 강남의 한 골프전문점 관계자는 "지난 3월부터 손님이 크게 늘어 지난해보다 2배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고 말했다. 특히 "고급을 찾는 사람이 많다" 는 것.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달의 경우 골프용품 수입액은 6백72만6천만달러로 지난해 동기에 비해 1백79%가 늘었다. 백화점과 전문 골프용품 관계자들은 "매출이 외환위기 이전의 60~70% 수준을 회복했으며 연말이면 완전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고 전망했다.

모피나 보석류도 마찬가지. 지난 1월 백화점들의 정기 바겐세일에서는 각 모피매장의 판매가 지난해에 비해 최고 4배 이상 늘었고, 김포세관이 집계한 1분기 통관 실적은 다이아몬드와 진주.루비 등 보석류 수입이 98년보다 1.9배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차진용.이수호.김종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