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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일본 왕세자를 초청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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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정확히 20년 동안이다. 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처음 제안한 이후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5명의 대통령이 줄기차게 제안한 게 있다. 일왕의 방한이다. 하지만 메아리가 없다. 과연 뭐가 문제인가.

2005년 초의 일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지만 ‘한·일 우정의 가교 콘서트’란 행사를 통해 나루히토(德仁·49) 왕세자 내외의 방한을 추진했던 적이 있었다. 비올라 연주가 주특기인 나루히토 왕세자 스스로 적극적이었다. 물밑 작업도 상당히 진행됐다. 이때 일본 궁내청 고위 간부가 끼어들었다.

“저격수를 어떻게 막을 참이냐.” “단 몇 명이라도 방한 반대 데모를 한다면 누가 책임질 거냐.” 이야기가 진전될 턱이 없었다. 결국 방한 계획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만일’에 목숨 거는 게 일본 관료다. 어찌 보면 반대를 위한 구실이기도 했다.

일왕의 한국에 대한 애틋한 감정과 방문 의지는 상당하다. 2001년 12월 기자회견에서 “간무 천황(桓武·제50대 일왕)의 생모는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었다는 점에서 한국에 연(緣)을 느낀다”고 말한 것도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에 맞춘 방한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었다. 2005년 6월 사이판 방문 시 예정에 없이 돌연 ‘한국평화기념관’을 방문해 위령비 앞에 고개를 숙인 것이나,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유학생 이수현씨의 추모영화 시사회를 찾아 눈물을 훔친 것은 고이즈미 총리도, 아베 총리도 아닌 일왕 내외였다. 일왕 방한의 걸림돌은 한국이 아닌 일본 내부였다.

일본의 정권이 바뀌었다. 난 새 정권의 막강 실력자 오자와 이치로가 2000년 2월 방한 당시 기자에게 했던 말을 또렷이 기억한다. “일본은 한국의 천황 방한 요청을 순수히 받아들이는 게 좋다. (천황 방한 시) 뭔가 발생할 경우 오히려 양국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도 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정치가 결정하고 책임질 일이다.” 일본 내부의 변신을 기대해 보자.

하지만 난 ‘일왕 방한’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번에 매듭을 풀기 힘들면 단계적으로 풀면 된다. 먼저 일 왕세자를 초청하자는 이야기다.

영국 왕실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아직 방문하지 못한 주요국이 세 곳 있다. 아일랜드, 이스라엘, 그리스다. 한·일과 마찬가지로 양국 간에 역사적·정치적 갈등이 있다. 주목할 점은 영 왕실이 아일랜드와 이스라엘에 우선 찰스 왕세자를 방문케 한 이후 성공적인 양국 관계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내년은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다. 그런 점에서도 난 앞으로 일왕이 될 나루히토 왕세자의 방한이 더 적절할 수 있다고 본다. 과거청산도 좋지만 미래지향을 위한 새로운 100년의 재출발로 삼는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일 왕세자가 간무 천황 생모의 고향인 백제 백마강을 거니는 모습을 보며, 한국의 젊은이들과 어울려 비올라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며 한국인·일본인 모두 새로운 한·일 시대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김현기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