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인센티브’ 솔깃했나 … 김정일, 미국에 프러포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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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18일 서울 남대문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최근 한반도 주변정세와 북핵 문제 전망’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회담과 양자회담에 참여할 의향이 있다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언급은 6자회담에 ‘다시는’ ‘절대로’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던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선 모양새다. 핵과 북·미 관계 개선 등 핵심 사안은 미국과 직접 대화를 통해 해결하고,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의 체면도 살려주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김 위원장이 ‘6자회담’이 아닌 ‘다자회담’이라고 밝혀 기존의 6자회담과는 다른 형태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자신들이 해놓은 말이 있는 만큼 기존 형태로의 복귀는 어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미국도 지난달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방북 이후 ‘새로운 형태’의 다자회담을 언급하고 있어 북한에 명분을 만들어주던 분위기였다. 이 때문에 북·미가 최근 뉴욕채널을 활용한 물밑 대화에서 회담 틀을 바꾸자는 뜻에 의견이 모아졌을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미국의 대북정책 전문가는 “김명길 유엔 주재 차석대사는 최근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며 “미 국무부 관계자들을 포함해 오바마 캠프의 한반도정책 팀장이었던 프랭크 자누지 상원 외교위 전문위원, 한반도통인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와 교감을 나누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6자회담을 대체할 새로운 틀의 구체화된 내용은 아직 윤곽이 나오지 않고 있다. 관계국들 간의 논의와 회담 형식을 정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도 필요하다. 정부 당국자는 “새로운 형태의 회담이 이뤄지면 2·13, 10·3 선언 등 기존의 6자회담에서 이뤘던 합의의 유용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회담 당사국들의 의견을 모으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도 회담에 참여하겠다는 ‘선언’이 아닌 ‘참여할 수 있다’는 의향 수준에서 언급을 했다. 좀 더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18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유사시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선제 타격 여부를 묻는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로켓 발사와 핵실험 등 한동안 긴장을 고조시키던 북한의 입장 선회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우선 북·미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클린턴 전 대통령 방북 이후 미국과 북한의 입장이 바뀌기 시작했다”며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의 핵폐기 시 북·미 수교를 비롯해 에너지·식량 지원, 대북제재를 완화할 수 있다는 오바마 정부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라인이 진용을 갖추며 대화 가능성이 커지자 북한도 호응하고 나선 것이라는 얘기다.

중국의 대규모 경제지원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도 있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는 “북·중 수교 60주년을 맞아 중국이 예정했던 대규모 경제지원 계획이 북한 핵실험으로 중단됐었다”며 “다음 달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 방북을 계기로 양국의 관계정상화와 경제적 지원을 염두에 둔 사전 정지작업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이 다이빙궈 국무위원을 만나기 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내세워 중국의 지원 입장을 확인한 뒤 최종 결심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김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됐을 때는 대외 긴장 고조를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지고, 후계자 문제와 핵문제를 해결하려 했었다”며 “건강이 회복되면서 여유를 갖게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용수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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