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차급발진 대책 세워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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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자동차 급발진 사고가 연일 터져나와 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운전면허 소지자만도 2천여만명에 달하는 지금 급발진 사고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시동을 걸거나 자동 변속하는 등 가장 기본적인 자동차 조작과정에서 이같은 사고가 발생한다니 운전자나 동승자, 길거리의 주민들이 어떻게 안심할 수 있겠는가.

상황이 심각함에도 당국의 대응은 더디기 짝이 없고, 자동차 제조사들은 사고원인을 운전미숙 탓으로만 돌린다니 안전불감증이라는 고질병이 여기서도 또 확인된다.

급발진은 주로 자동변속기가 장착된 차량이 출발.변속.주차과정에서 갑자기 굉음을 내며 앞뒤로 내닫는 이상현상을 말한다.

최근 들어 피해자들이 모임을 구성, 국내외 자동차 제조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책임공방은 법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문제는 미국.일본 등에서도 80년대부터 사회문제로 비화해 전문가들이 원인분석에 나섰으나 뾰족한 해답을 얻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제조사측 책임을 더 엄격히 물은 결과 피해자들이 승소하는 사례가 잇따른다는 소식이다.

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지난해 초부터 현재까지 상담의뢰가 들어온 급발진 추정 사고 발생건수는 이틀에 한번꼴이라고 한다.

운전자가 자신의 실수로 치부하고 넘어갔을 사고 건수를 합치면 훨씬 많을 것이다.

그것도 차종이나 운전자의 숙련도, 국산.외제차 여부를 가리지 않고 사고가 일어난다니 운전 당사자들은 물론 전국민이 피해위험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이쯤 되면 뚜렷한 원인이나 책임소재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운전자의 조작미숙이나 일상점검 소홀을 핑계삼아 그냥 넘길 사안이 아니다.

한편에서는 사법부의 판단을 구하겠다고 나섰고 또 건설교통부를 중심으로 제조사.소비자단체.피해자모임 등이 모여 원인규명을 하겠다니 그것은 그것대로 추진해 한시바삐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길 바란다.

관련 예산을 마련하고 외국사례도 정밀히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욱 시급한 것은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안전.홍보대책들을 수립해 운전자와 일반국민이 사고피해를 볼 소지를 최소화하는 조치다.

이미 선진국들이 의무화하고 있는 시프트 록 같은 보조 안전장치를 자동차 회사들이 차량에 장착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운전면허시험이나 재교육 같은 기회를 이용해 시동시에는 반드시 브레이크를 걸어놓고 또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상태에서 속도를 조절하도록 권장하는 등 급발진 사고 대비를 일상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행정당국과 자동차 제조사들은 국민과 고객의 생명이 걸려 있는 문제인 만큼 그동안의 안이한 자세에서 벗어나 문제해결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운전자들도 이제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는 생각으로 안전운전 수칙 항목에 급발진 대비책을 추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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