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참사] “6명 희생됐는데 사과 한마디 없다니…” 격앙된 여론 반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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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사무소에 마련된 사고수습대책위원회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수색 작업 상황을 듣던 도중 흐느끼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8일 북한에 임진강 무단방류 사태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 것은 하루 전 북측이 전통문을 통해 밝힌 방류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댐의 수위가 높아져 5일 밤부터 6일 새벽 사이에 긴급히 방류했다는 게 북측 설명이다. 하지만 왜 물을 다급하게 빼야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빠져 있다. 6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참극의 원인을 제공해 놓고도 사과나 유감 표명이 없는 점도 정부가 대북 대응 강도를 한 단계 높인 이유가 됐다.

지난달부터 잇따른 대남 평화 공세를 취해 온 북한이 ‘미필적 고의’에 가까운 행동으로 남측에 적지 않은 인명 피해를 입힌 데 대해 격앙된 분위기도 정부 내에서 감지된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만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조문단까지 파견하는 유화 제스처를 취했지만 본질적으로 달라진 게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난주 우라늄 농축 핵 개발 위협에 이어 또다시 대남 도발성 행동을 보이는 것이란 관측까지 제기된다. 한 당국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북한의 진정성 없는 대남 접근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정부 내 판단도 사과 요구의 한 배경”이라고 귀띔했다.

우리 국민이 숨지는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대북 전통문을 보내는 선에서 그칠 것이냐는 비판 여론도 의식한 측면이 있다. 통일부 등 관련 부처는 당초 진상을 철저히 파악한 뒤 단계적으로 북한에 조치를 취해 간다는 입장을 세웠다. 사과 요구와 관련해선 “북한에 ‘항복하라’는 얘기인데 실효성이 있겠느냐”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북한의 ‘수공(水攻)’이란 지적이 나올 정도로 국민의 대북 감정이 악화되자 어물쩍 대응했다가는 정부에 비판의 화살이 쏟아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사과 요구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초반부터 좀 더 단호하게 대응했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는 7일 오전 보낸 대북 전통문에서 북한에 해명이 아닌 ‘설명’이란 표현을 썼다. 항의 대신 ‘공유하천 협력’ 운운한 것도 신중치 못했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북한에 더 강력한 압박책을 구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사과 이후 뾰족한 대북 압박 카드가 없다는 점에서 고심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진상 파악부터 하고 조치를 취하려다 보니 대처가 미흡해 보인 측면이 있었다. 사태의 심각성은 잘 알고 있다”면서도 “이럴 때일수록 차분한 대북 대응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 측 황강댐과 임진강 상류댐 상황을 분석해 온 한·미 정보 당국 측은 “균열 등 구조적 결함 징후는 포착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라고 관계자들이 전했다.

◆북한은 어떻게 나올까=북한은 다급할 게 없어 보이는 분위기다. 정부 당국자는 “당분간 남측 분위기를 탐색하며 대응 수위를 결정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불가항력적 상황’이라고 발뺌하거나 남측의 사과 요구에 반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6일 시작될 금강산 이산 상봉을 연기하는 몽니를 부릴 수도 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직접 대남 유화 분위기 조성에 팔을 걷어붙인 국면이란 점에서 적절한 선에서 유감을 표명하는 것으로 매듭지을 공산이 크다는 전망도 있다. 북한이 사과한다 해도 정부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고민스러운 대목이다. 지난해 7월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당시 북한은 ‘유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둘러싼 이견으로 아직까지 금강산 관광은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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