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아름다워] 쏟아지는 라이선스 뮤지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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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타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매개체 가운데 하나가 번역이다. 번역은 출판물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대사 외에 다양한 형태의 언어가 존재하는 공연에서도 번역은 필수 요소다. 외국 공연물 소개가 늘면서 그 중요성도 커지는 추세인데, 공연 번역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첫째, 자막이다. 우리말 자막(서브타이틀)은 연극.오페라.뮤지컬 등 대사가 있는 공연물에서 사용한다.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를 쓰느냐에 따라 작품이 죽고 산다. 작품이 뛰어나도 서브타이틀 번역이 형편없으면 점수를 깎일 때가 많다.

둘째, 연기자의 대사와 노래다. 흔히 라이선스(license) 뮤지컬에서 눈에 띈다. 이는 로열티를 주고 공연권과 무대장치.의상 등을 외국에서 들여오고 연기는 우리 배우가 맡아 공연하는 형태다. '오페라의 유령''맘마미아''미녀와 야수'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자막 번역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발생한다. 외국어의 언어 구조에 맞게 작곡된 음악(노래)을 '단순무식하게' 우리말로 옮겨서는 낭패 보기 십상이다. 뮤지컬은 작곡.작사에서 운(韻)을 중요시하는데, 번역할 때 이걸 살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셋째, 연기자의 '연기'와 '정서'다. 이는 문자언어 이상을 의미한다. 연기와 정서적인 언어도 우리 실정에 맞게 번역돼야 그 공연물이 '우리 것'으로 토착화할 수 있다. 지역 정서가 배제된 기계적인 번역과 이식은 감흥을 얻기 힘들다.

위에서 지적한 공연 번역 방식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첫째와 둘째 방식은 최근 눈에 띄게 발전했다. 하지만 아직 셋째 항목의 중요성은 간과하는 느낌이다.

이른바 '원작의 규격(오리지널 스탠더드)'에 충실한 공연물이라 하더라도 관객들이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정서의 번역'이 미흡한 탓이다. 외국 연출가의 손으로 빚어지는 라이선스 뮤지컬 제작에서 특히 풀어야 할 숙제다.

정재왈 공연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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