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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강, 공짜 점심이 돼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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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역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앤젤리카 팰렁크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식을 들었다. “열차가 역에 진입하다 탈선했습니다.”

객차 6량이 선로를 벗어나 옆의 화물열차를 덮친 것이다. 사망 8명, 중상 77명. 사망자 명단에는 남편 폴도 있었다. 1991년 7월 31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루고프에서 발생한 참사다.

앤젤리카는 사고원인을 밝히기 위해 소송을 냈다. 당시 선로관리를 맡은 화물운송기업 CSX의 책임으로 드러났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선로 점검을 소홀히 한 것이다. 법원은 CSX에 5000만 달러를 보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CSX는 정작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연방법상 여객운송을 담당하는 공기업 앰트랙(Amtrak)이 사고의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 데이비드 존스턴 기자는 『프리 런치(Free Lunch)』라는 책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CSX는 공짜 점심을 먹었습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공짜 점심은 이래서 나쁜 거다. 누군가 공짜 점심을 누리면 다른 한쪽에서는 그만큼 손해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CSX가 5000만 달러짜리 공짜 점심을 즐기는 동안 저소득층 지원 등에 쓸 예산은 줄어만 갔다(이런 원리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사회 전체적으로는 ‘공짜 점심은 없다’고 말한다).

요즘 4대 강 사업 예산을 놓고 공짜 점심 논란이 일고 있다. 예산 책정은, 쉽게 말하면 ‘대포와 버터’ 중 하나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가진 돈은 뻔한데 국방을 강화하려면 대포를 더 사야 한다. 그러면 필요한 버터(복지)를 살 돈은 줄 수밖에 없다. 당연히 불만층이 나오게 된다. 매년 예산안을 짤 때 이런저런 잡음이 나오는 건 이래서다.

올해 잡음이 더 심한 건 4대 강 사업이 공짜 점심으로 변질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 때문이다. 일부 부처와 지자체는 “4대 강 사업만 챙기기 위해 다른 예산을 뭉텅 자른다”고 볼멘소리를 낸다. 예산안을 짜는 기획재정부는 펄쩍 뛴다. “사업별 특성에 맞춰 예산을 지원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내년 4대 강 예산은 연계사업 합쳐 8조6000억원. 올해보다 10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뻔한 나라살림에서 뭉칫돈이 빠져나가니 사회간접자본이나 복지 분야의 살림살이가 걱정돼 불만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살림살이에도 우선순위가 있다. 큰일을 하자면 목돈을 미리 떼놓고 살림을 꾸릴 수밖에 없다. 4대 강을 깨끗이 하려는 건 환경도 개선하고, 일자리도 많이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니 당분간 시급하지 않은 사업을 다이어트하는 건 불가피하다. 다만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게 있다. 귀중한 세금이 허투루 쓰이지 않도록 4대 강 예산집행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점이다. 감시 레이더망에 10원짜리 한 개의 씀씀이도 모두 잡혀야 국민이 납득하고, 지지할 수 있다. 만약 나랏돈이 흥청망청 쓰여 4대 강 사업이 공짜 점심이 된다면 우리가 점심값(세금)을 낼 이유가 없다.

김종윤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