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용 기름이 수출용보다 싸다”는 정유사, 사실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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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 값이 연중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기름값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다. 31일 서울 청담동의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가 1973원에 판매되고 있다. [김도훈 인턴기자]


“정유사들이 내수용 휘발유·경유를 수출용에 비해 저렴하게 공급하고 있는데도 국민의 폭넓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유사들의 이익단체인 대한석유협회 오강현 회장은 올 4월 21일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제 유가가 오를 땐 번개같이 국내 기름값을 인상하면서, 유가가 떨어질 땐 굼뜨게 내린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수용 휘발유·경유 가격이 수출용보다는 싸다는 점을 단서로 달았다.

지난해 5월에는 기획재정부가 “일본 정유사들에 비해 국내 정유사들의 영업이익률이 높다”며 국내 기름값이 비싸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냈다. 당시 석유협회는 즉각 반박했다.

그러나 “내수용 휘발유·경유를 수출용보다 싸게 공급한다”는 석유협회와 정유사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가 정유사들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사이트(dart.fss.or.kr)에 올린 올 상반기 내수·수출 단가를 조사한 결과 내수용 단가가 수출용보다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단가는 정유사가 주유소·대리점에 넘길 때 매기는 공장도가격(세전)이다.

에쓰오일의 경우 올 상반기 내수용 휘발유 평균 단가는 L당 561.6원, 수출용 단가는 510.21원이었다. 내수용이 L당 51.39원 비쌌다. GS칼텍스는 내수용 휘발유 단가가 수출용에 비해 L당 38원, SK에너지는 34.03원 각각 높았다. 현대오일뱅크만 수출용이 내수용보다 L당 4.71원 더 비쌌다.


경유는 차이가 더 났다. 내수용이 L당 51.83~75.65원 비쌌다. 정유사들이 수입한 원유를 재료로 가공한 휘발유·경유를 해외에 싸게 팔고, 국내 시장에는 더 비싸게 내놓은 것이다. 이런 사정에다 국제 유가의 오름세까지 겹치면서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가격은 1월 1일 L당 1298.89원에서 지난달 30일 1694.29원으로 30.4% 오르며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내수용과 수출용 단가의 차이에 대해 석유협회는 “휘발유·경유를 수출할 때는 원료인 원유를 들여오면서 내는 관세(3%)와 석유수입부과금(L당 16원)을 환급받기 때문에 그만큼 단가를 낮출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관세와 석유수입부과금 환급분은 모두 합쳐 올 상반기 평균 L당 약 28원에 그쳤다. 이것만으로는 휘발유 내수용이 수출용보다 L당 34~51원, 경유는 52~76원 비싼 것을 설명하기에 불충분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는 올해보다 내수-수출 단가 차이가 더 컸다. 정유사들이 전자공시한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SK에너지의 경우 지난해 내수용 휘발유 단가는 L당 715.41원, 수출용은 609.47원으로 내수용이 L당 105.94원 비쌌다. 경유도 회사별로 L당 14~54원 내수용 가격을 더 받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유업체 관계자는 “관세 환급 등의 요인뿐 아니라, 국내 판매의 경우 광고 선전비와 거래처 관리비 등이 든다는 점에서 내수용 단가를 더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녹색소비자연대 이주홍 정책팀장은 “정유사들이 국내에서 과도한 이익을 취하지 않는지 공신력 있는 기관이 분석하고 발표하도록 해 소비자를 납득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석유산업을 관장하는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휘발유와 경유의 내수용 단가가 더 높은 원인을 파악하는 데 착수하겠다”고 말했다.  

권혁주·문병주 기자 ,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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