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마약 파고’ 미국 위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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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중남미가 마약 중독자들의 ‘천국’이 되고 있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26일 보도했다.

아르헨티나 대법원은 25일(현지시간) 대마초를 소지한 혐의로 기소된 청년 5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적인 공간에서 개인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어서 제3자를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멕시코에선 21일 더 관대한 법이 발효됐다. 대마초는 물론 헤로인·LSD같이 더 강력한 마약을 갖고 있다가 적발되어도, 개인적인 용도로 소량만 소지했을 경우에는 감옥에 가지 않는다. 대략 마리화나 4개비, 코카인 4회 흡입 분량, 헤로인 50㎎, 메타암페타민 40㎎, LSD 0.015㎎까지 용인된다. 다른 나라들의 사정도 엇비슷하다. 브라질의 경우 마약 보유 자체는 범죄지만 개인적인 용도로 소량을 소지하면 처벌하지 않는다. 우루과이는 이미 개인용 소량 소지자에 대한 형사 처벌조항을 없앴다. 콜롬비아는 마리화나·코카인까지는 허용하고 그 외 마약 소지만 처벌한다.

중남미 국가들이 마약 복용자 처벌을 완화하는 것은 마약 중독을 ‘범죄’가 아니라 ‘공공 보건상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약 중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치료’라는 것이다. 이들은 포르투갈을 좋은 사례로 든다. 포르투갈은 2001년부터 개인적인 용도로 마약을 보유한 사람에 대한 처벌을 중단했다. 경찰은 마약만 압수하고 복용자는 중독 여부를 따져 치료시설로 보낸다. 그럼에도 코카인 복용률은 유럽 최저 수준이다.

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멕시코·콜롬비아 등 남미 각국은 마약을 전문적으로 생산·유통시키는 범죄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병력·장비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자잘한 일반 마약 중독자들을 단속·처벌하는 데 힘을 빼느니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에 집중하는 쪽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마약 소비국인 미국의 입장은 다르다. 중남미가 ‘마약 천국’이 되면 이들 나라로 ‘마약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가 가장 큰 문제다. 샌디에이고 카운티의 한 경찰은 멕시코의 새 법에 대해 “공식적으로 허가된 마약 시장을 제공하는 꼴”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포르투갈의 경우 ‘마약 여행’을 막기 위해 마약을 소지한 외국인은 종전처럼 처벌하고 있지만, 멕시코 법은 내·외국인을 구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멕시코의 법안 통과를 막지 못한 버락 오바마 정부에 대한 비난 여론도 일고 있다. 2006년 멕시코 의회가 유사한 내용의 법안을 승인했을 때 조지 W 부시 정부는 멕시코에 강하게 항의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만들었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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