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마세요, 에어백·ABS는 안전‘보조’장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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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에어백은 충돌 때 운전자가 유리창 등에 부닥쳐 생길 수 있는 부상을 막아 주지만, 안전벨트를 보완하는 장비에 불과하다. 렉서스 LS600h의 운전석·조수석 에어백. [도요타코리아 제공]

최근 자동차는 온갖 전자 장비로 가득하다. 하지만 에어백이나 미끄럼 방지 브레이크(ABS), 차체 자세제어장치 등 안전과 관련이 있을 경우 이들 첨단 장비를 맹신해서는 곤란하다. 전자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조건이 맞아야 한다. 따라서 이들 장비는 어디까지나 치명적인 피해를 줄이는 보조적인 장치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간단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안전장치인 안전벨트를 제대로 매고, 과속을 피하는 게 사고를 막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에어백 터지는 것만이 능사 아니다=6월 29일 경기도 과천시 인근 고속화 도로에서 4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독일제 고급 승용차를 운전하던 A씨가 정체로 서 있던 차량 행렬을 보지 못해 생긴 사고였다. 다행히 사망·중상자는 없었다. 하지만 운전자 A씨는 사고 뒤 해당 자동차 회사에 강력히 항의했다. 차 보닛이 우그러지는 등 형편없이 망가졌는데도 에어백이 터지지 않았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 사고에서는 에어백이 안 터져야 정상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급정지를 하는 바람에 차 앞부분이 가라 앉으면서 범퍼가 아닌 보닛 위쪽에 충격이 가해진 상황”이라며 “이런 경우에는 에어백이 터지지 않아야 정상”이라고 말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에 따르면 올 7~8월 두 달 사이에 들어온 에어백 관련 고발이 37건이나 된다. 90% 이상이 충돌 상황에서 왜 에어백이 터지지 않았느냐는 항의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에어백은 화약을 이용해 짧은 시간에 팽창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상황에서는 화상·찰과상·타박상 등으로 오히려 운전자를 위협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엄격한 조건이 맞아야만 작동하도록 돼 있다. 정면이 아닌 후방이나 경사면, 상하 방향의 충격에는 작동하지 않는다. 정면충돌도 속도가 줄어드는 정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이를 위해 차량 내부에는 가속도를 재는 센서(G센서)가 있다.

특히 에어백을 믿고 안전벨트를 매지 않는 것은, 에어백 없이 안전벨트만 맨 것보다 오히려 더 위험하다. 현대모비스 연구개발본부의 여태정 차장은 “에어백은 어디까지 보완적인 장비”라며 “가장 기본적인 장비는 바로 안전벨트”라고 말했다.

◆ABS도 만능은 아니다=흔히 ABS

(Anti-locking Brake System)로 불리는 미끄럼 방지 브레이크도 운전자가 과신하기 쉬운 장비다. ABS는 본래 빙판이나 빗길 등에서 브레이크를 잡을 때 마찰력 부족으로 차가 한쪽으로 쏠리며 선회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고안됐다. 고속 주행 중에 차가 한쪽으로 돌면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ABS만 쓰면 어떤 상황에서도 제동거리가 짧아져 안전할 것이라는 맹신이다. 대부분 제동거리가 줄지만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다. 여 차장은 “90% 이상의 노면에서 제동거리가 줄지만 노면이 고르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 길어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산 차량에도 많이 도입되는 차체 자세제어장치도 마찬가지다. 업체에 따라 다양한 이름(VDC·ESP 등)으로 불리는 이 장치 역시 굽은 길을 돌아나갈 때 차가 균형을 잃는 것을 막아 주지만 한계가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 안전본부의 김종훈 부장은 “아무리 자세제어장치가 있어도 상식을 넘는 고속으로 코너를 돌 때는 아무 의미가 없다”며 “오히려 이 장치를 믿고 지나치게 과속을 하면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 회사들도 국내에서 자주 일어나는 사고 상황에 맞도록 장비를 개선하고 소비자의 오해가 없도록 작동 원리를 더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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