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연례안보협 결산]핵우산 펼치고 햇볕도 쪼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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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30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 (SCM) 는 북한 핵의혹 시설 건설 및 미사일 재발사 위협으로 한반도 긴장이 한층 높아진 시점에서 열린 탓인지 그 어느 때보다 큰 무게를 담고 있다.

한.미 양국장관은 김대중 (金大中) 정부 출범후 처음 열린 SCM에서 무엇보다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 위협에 대한 단호한 대응의지를 다짐했다.

코언 미 국방장관은 북한의 생화학 무기.미사일 위협과 관련, "핵 우산을 포함한 즉각적이고 효과적인 지원을 하겠다" 는 종전의 방위공약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핵에는 핵' 이란 종전의 핵 우산과 뉘앙스를 달리했다.

북한이 2천~5천t 정도 보유 중일 것으로 추정되는 생화학 무기를 미사일에 탑재, 대남 도발을 감행할 경우에도 핵 공격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미다.

한.미.일 3국 국방장관은 최근 연쇄회담을 통해 "북한이 또 한차례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군사적 경고를 선택할 수 있다" 는 공감대를 형성한 바 있는데 이번 회담에서 이를 또다시 확인했다.

양국 장관이 그간 미뤄온 '한국 미사일 사거리 1백80㎞' 규정 완화에 원칙적 합의를 본 것도 단호한 대응의지를 함축한 대목이다.

이에 따라 다음달로 예정된 한.미 외무 당국간 미사일 자율 규제 조정협상에서 사거리를 3백㎞로 연장하는 세부 일정이 마련될 전망이다.

미국은 87년 출범한 미사일통제체제 (MTCR)가 3백㎞까지는 규제대상이 아님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91년 한국에 대한 미사일 개발 지원 등을 담은 미사일각서를 교환하면서 사거리를 1백80㎞로 묶었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게 이유인데 '1백80㎞' 는 휴전선에서 평양 이남까지의 정치.군사적 거리. 한마디로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뭉쳐 있다.

양국은 이밖에 북한의 침투도발에서 전면전에 이르는 모든 상황에 대한 한.미 공조를 확인, 천명했다.

양국장관은 이와 함께 통일 이후에도 한반도에 미군 병력을 주둔시킨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명시했다.

공동성명은 "한.미 쌍무 안보동맹관계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시키면서 장기적으로 유지한다" 고 밝혔다.

통일후 미군 주둔 문제는 그동안 누차 언급된 문제지만 국내에선 이 문제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거친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논란도 예상된다.

이밖에 주한 미군 헬기의 한국내 창 정비를 약속하는 등 방산협력 증진 방안에 합의한 것도 회담의 성과라 할 수 있다.

양국은 군수.방산.기술협력에 관한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앞으로 2년간 '한.미 실무위원회' 를 운영할 계획이며 이는 양국 군사협력이 선언적 효과를 넘어 실질적 진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차영구 (車榮九) 국방부 대변인은 "이번 SCM은 어느때보다 양국관계가 돈독한 시점에 열려 거의 모든 사안에서 합의가 쉽게 이뤄졌다" 며 "북한의 한.미 연합방위태세의 기본 틀이 마련된 셈" 이라고 평가했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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