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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성장으론 부족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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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지금 한국과 미국 두 나라에서는 경제성장률 숫자를 두고 무더위 못지 않게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성장률은 1분기의 4.5%에서 2분기에 3%로 떨어졌는 데 부시 행정부는 그래도 이 정도면 회복세의 계속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케리 후보 진영에서는 부시가 망쳤던 경제가 잠깐 회복조짐을 보이는 듯했지만 유턴해 다시 주저앉았다고 반박한다.

사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3% 성장은 대단한 것이다. '신경제' 바람을 일으켜 경제실적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던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재임 8년간 올렸던 연평균 성장률은 3.7%였다. 문제는 현재의 3%성장이 과거와 달리 고용 확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은 7월 한달간 새로운 일자리가 24만개 정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3만2000개 증가에 그쳤다. 다만 경제논쟁에서 중립적인 중앙은행이 최근 경제가 주춤거리는 것은 고유가 때문이고 앞으로도 탄탄한 성장이 예상된다고 보아 연방기금 금리를 다시 0.25%포인트 인상함으로써 부시측 의견에 동조했지만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면서 성장률 논쟁은 점점 격화될 것같다.

한국에서는 성장률 5%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먼저 청와대로부터 국민소득 1만달러, 경제규모 세계 12위인 국가에서 연 5% 성장이면 고성장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일부 관변 인사들은 지난해에 3%대 성장을 했지만 위기나 파탄은 없었으며, 올해 들어 성장률이 5%대로 크게 높아졌는 데 무슨 위기론이냐며 정부를 편들고 있다. 경제부총리는 내년에도 5%대 성장이 가능하다고 전망한 바 있다. 언론이 너무 비관적인 부문을 부각시키면서 위기감을 조성한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 경제의 실상과 국민의 고충을 제대로 보지 못한 주장이라고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도 많다. 민간경제연구소에서는 내년 성장률이 3%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많은 국민은 언론보도와 관계없이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하고 걱정하고 있으며 장래에 대해 희망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사실 5%라면 우리 경제가 인플레없이 최대한 성장할 수 있는 잠재성장률 수준인데도 왜 이렇게 비관적 의견이 팽배하고 있는가. 불확실성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현재의 5%가 과거 또는 평년의 그것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지난해 경제가 워낙 나빠 올해에는 조금만 좋아져도 성장률이 크게 높아지는 반등효과가 생기므로 국민의 느낌보다 통계숫자가 높게 나온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것은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다음으로 원유 등 수입품 가격이 급등하는 경우에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국민소득 증가 속도를 과대 계상하는 경향이 있다. 국내소득의 상당 부분이 해외로 유출되는 데도 이것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원인은 경제 및 산업구조가 과거와 크게 달라져 수출부문이 잘 되어도 그것이 내수와 고용을 유발하는 효과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지금의 5% 성장은 과거의 2% 내외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국민의 비명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정부는 현 수준을 고성장으로 합리화할 것이 아니라 내수 확대에 보다 큰 힘을 쏟아야 할 때다. 대다수 국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면 올해 같은 환경에서는 적어도 8% 정도의 성장이 필요하다고 본다.

노성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