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탈북자들 방치만 할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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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16일 중국 공안당국은 지린 (吉林) 성 퉁화 (通化) 시에서 대대적 단속을 벌여 탈북자 (脫北者) 1백50여명을 붙잡아 북한으로 압송했다고 한다.

북한이 범죄자 인도를 요청하고 중국 공안당국이 무국적자들을 색출해 본국으로 압송한데 대해 우리 정부가 나서서 공식적으로 항변할 입장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압송됐을 때 받을 가혹한 처벌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강 건너 불처럼 바라보기만 해야 하나 하는 답답한 심정을 가눌 길 없다.

탈북자 대부분이 남한으로 오기 위해 생명을 걸고 국경을 넘은 큰 의미의 망명자들이다.

이들을 나몰라라 하고 다시 잡혀가 혹독한 처벌을 받게끔 방치해야만 할 것인가.

탈북자 중엔 국군 포로도 있었고 세살배기 아기도 있다고 한다.

국가적.인도적 차원에서 뭔가 해결책이 나와야 한다.

정부는 중국 속의 탈북자 숫자를 2천~3천명선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인권시민연합같은 시민단체나 옌볜 (延邊) 의 조선족들은 수만에서 10만명선까지 잡고 있다.

특히 지난 여름 이후 두만강 주변 7개 탈북자 수용소에는 수용인원이 두배로 급증했고 최근에는 탈북 고아들이 늘어나 옌볜 시가에 줄지어 다닌다고 한다.

무엇으로 끼니를 연명하고 추운 겨울 어디서 잠을 잘 것인가.

그 숫자도 1만명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중국으로서도 골치 아픈 사회문제가 될 것이고 단속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귀순자라면 원칙적으로 전원 수용하는 것이 공식 입장이라지만 현실적으로 극히 제한된 선별 수용을 택하고 있다.

외교적 마찰을 피해야 하고 그 많은 탈북자를 수용할 시설도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조처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여름 국군 포로 장무환씨가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 와 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었을 때, 대사관 여직원이 '우리는 몰라요' 하고 매몰차게 전화를 끊는 장면을 TV 화면을 통해 보면서 과연 정부가 무얼 하는 곳인가 하는 분노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적극적인 자세에서 탈북자들의 고통을 덜어줄 노력을 해야 하는 게 정부의 기능이고 국가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피하면서 탈북자들을 돕는 현실적인 길은 민간기구 (NGO) 와 유엔을 통한 길이다.

이미 많은 종교.시민단체들이 탈북자 돕기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정부와 기업이 이들 단체에 간접적으로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신변안전과 최소한의 생활터전을 마련해줘야 할 것이다.

또 외교채널을 동원해 탈북자들의 실상을 유엔에 알려 탈북자 구호문제를 유엔난민고등판무관 (UNHCR) 의 공식사업으로 전개하는 외교적 노력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 방법이 가장 효력있는 구호책이다.

제3국에서 조국을 원망하면서 떠도는 탈북자들을 정부.기업.종교.시민단체들이 힘을 모아 돕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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