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교수 금강산 동행기]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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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계절로는 늦가을이었지만 금강산은 이미 겨울로 접어들어 있었다.

금강호 갑판상에선 복주머니처럼 둥글게 말린 장전항구와 그 너머로 수반 위의 수석인 양 금강산 남북 60㎞하고도 그 여맥이 통째로 보였다.

혹은 톱니처럼, 혹은 예리한 도끼날처럼 날카로운 선을 그린 비로봉 정상에는 흰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특히 둘째 날은 밤새 눈이 더 내렸는지 신비로울 정도로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어 갑판에서고 부두에서고 사람마다 "저 흰 산이 무슨 봉이지" "비로봉이라는군"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실 그 이름은 알아 무엇하리오마는 신비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고픈 마음에 그 이름을 찾는 것이리라. 내가 지난 여름에 본 금강산과 초겨울 금강산은 너무도 달랐다.

금강산엔 계절마다 이름이 있듯이 봉래산 (여름) 과 개골산 (겨울) 은 이름만큼이나 다른 산이었다.

봉래산이 진초록 나들이복에 하얀 비단 사라를 걸친 모습이라면 개골산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발가벗은 채로 겨우 초록빛 손수건 하나로 몸을 가린 형상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금강산의 속살이 그처럼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갖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번 금강호에는 김영재.박광진.정명희.김병종 등 내가 얼굴과 이름을 잘 알고 있는 화가만도 10명이 동승했다.

그들은 옥류동.구룡폭.만물상에서 모두들 보는 앞에 스케치하면서 이렇게 소묘하기 좋은 산은 처음이라며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금강호의 첫 승객들이 반한 것은 바위산의 오묘한 모습만이 아니었다.

금강산엔 10대미 (十大美)가 있어 산악미.계곡미.수림미……하고 꼽더니 창터솔밭과 온정리의 장려한 미인송 (美人松) 의 솔밭을 지날 때는 그 아름다운 수림을 걷지 못함을 모두들 억울해 했다.

계곡미는 또 어떠했는가! 어떻게 물색이 저렇게 옥빛.비취 빛을 발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 먹는 생수보다 더 맑다니, 얼마나 맑으면 계곡 안쪽엔 미생물조차 없어 물고기가 살지 못할까. 어떻게 휴지 하나 비닐 조각 하나 없는 이런 청정지역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삼일포 단룡각에서 국제관광종합사 지도원 김철호 (30) 씨가 계단에 올라서서 탐승객들을 향해 "아름다운 금강산이 남쪽의 설악산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고 말할 때 모두들 잠시 침묵으로 숙연히 받아들이고는 이내 "우아" 하고 터져나갈 듯한 우레같은 박수를 보냈다.

금강산 첫 탐승객들이 받은 충격적인 아름다움은 산과 계곡과 나무에만 있지 않았다.

오히려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천진한 모습에서 느끼는 인간미였다.

동해에서 떠날 때만 해도 북한 주민에게 말을 걸면 80달러 벌금이라는 소리를 듣고 이게 무슨 황당한 얘기인가 하면서도 그런가보다 하고만 있었다.

우리 조가 첫날 옥류동 계곡 앙지대 (仰止臺)에서 쉬고 있을 때 남녀 한쌍의 관리원이 대빗자루를 들고 낙엽을 치우고 있었다.

나는 습관적 내지 본능적으로 말을 걸며, 지난 여름에 이미 다녀갔고 그때 엄영실 동무의 안내를 받았다며 실증까지 제시하니 장영애 (張英愛.28) 씨는 말문을 트고 나중엔 농담까지 던졌다.

내가 짓궂게 노래를 시키자 근무중이라 안된다며 빗자루를 들고 젊은 남성 기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옥류동에선 처녀들이 홀딱 벗고 목욕하고 있는데 그걸 못보고 가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빨리 가십시오. " 그리고 삼일포에서 만난 관리원 정길화 (24) 씨에게 "남남북녀가 노래 하나씩 합시다" 고 제안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남남북녀가 뭡니까. 북녀남남이지. " 그리고 장군대에서 만난 관리원 리상옥 (22) 씨를 끌어내어 끝내는 '휘파람' '월미도' '심장에 남는 사람' 세곡을 들었을 때는 모두들 그 아련하고 고운 가사와 창법에 취했다.

그래서 마지막날 만물상 오르는 길에 망장천 샘물가에서는 이문구.이문열.김성우.박범신 등 문필가들이 관리원 류정금씨에게 '심장에 남는 사람' 을 지정곡으로 신청하고 박범신 부부는 눌러앉아 그 노래를 배우고 있었다.

그렇게도 그리던 금강산의 산과 계곡과 나무와 인간을 평생 못잊을 감동으로 되새기며 돌아오는 배에서 나는 다시금 우리 민족에게 금강산이 갖는 저 위대한 미를 새겨보게 됐다.

그러다 불현듯 일어나는 질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에 대한 대답을 나는 아직 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북한 사람에게 금강산은 이제 무엇이란 말인가. "

유홍준 <영남대 교수.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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