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전쟁 개도국 승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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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유럽과 개도국 간의 '설탕 전쟁'이 개도국 쪽의 승리로 기울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연간 14억달러에 달하는 유럽연합(EU)의 설탕 수출 보조금이 불공정 관행이라는 내용의 예비 판정을 내렸다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5일 보도했다.

이는 세계 주요 설탕 생산국인 브라질.호주.태국이 25개 회원국의 EU를 상대로 제소한 데 대한 판정이다. 예비 판정은 최종 판정까지 오래 걸릴 것에 대비해 최종 판정의 방향을 미리 제시하는 것이다. 예치금을 내야 하고 당장 교역 상대국으로부터 각종 불이익을 당할 수 있는 등 실질적인 효력이 있다.

브라질의 호베르투 호드리게스 장관은 "이번의 판정은 보호주의 타파를 위한 일대 승리"라고 치켜세웠다. 세계 최대 설탕 수출국인 브라질 입장에선 값싼 자국 설탕의 해외 판로를 더욱 넓힐 수 있게 됐다. EU의 설탕 수출 보조금으로 인해 브라질은 2002년 기준으로 5억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됐다. 전문가들은 "EU 보조금이 폐지되면 브라질의 설탕 수출은 한해 200만t 이상 늘 것"으로 추정했다.

EU 보조금이 없어지면 왜곡된 설탕 국제가격 구조가 시정되고, 개도국들의 입김이 커지면서 설탕 값이 20% 가까이 오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한편 EU 집행위원회 소식통은 "WTO 판정에 불복해 항소할 것 같다"고 전했다. 보조금 폐지가 대세라 하더라도 항소하면 일단 1년 안팎의 시간을 벌 수 있다. 프랑스 등 주요 회원국의 농민을 보호하려는 EU는 물론이고 아프리카와 중미 카리브해 연안, 태평양 연안의 설탕 생산국들 가운데 EU와 이해관계가 비슷한 곳이 많다. EU는 자신의 영향권 아래 있는 이들 나라의 설탕을 국제 시세의 세배 이상의 값을 쳐서 수입해 왔다.

이번 판정은 지난주 WTO 제네바 회담에서 각국의 농업보조금을 삭감하기로 합의한 데 이어 나온 것이어서 앞으로 농업보조금 관련 협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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