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말리는 '혈액 부족'…감염 파동에 방학 겹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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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액 창고가 비어가고 있다. 혈액 관리가 부실하다고 지적되면서 헌혈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 서소문의 대한적십자사 중앙혈액원 직원들이 텅 빈 보관창고에서 얼마 남지 않은 혈액 재고량을 점검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 2일 한강성심병원에 실려온 10대 후반의 화상 환자는 당장 수술받아야 하는데 일정을 잡지 못했다. O형 혈액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이날 인공관절 수술이 예정돼 있던 60대 남성 환자도 혈액을 확보한 이후 수술을 받기로 연기했다.

이 병원 혈액은행 허미나 교수는 "병원 내 게시판에 헌혈을 권유하고 있으며, 필요한 경우 지방 병원이나 적십자사에까지 연락해 혈액 '빌려쓰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들이 최악의 '혈액 가뭄'으로 초비상이다. 수혈이 필요한 환자들도 발을 구르고 있다.

3일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O형 적혈구의 경우 이날 보유량이 626팩으로 하루 소요량(1351팩)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A형 적혈구의 보유량(1093팩)도 하루 소요량(1653팩)에 미달했다. 급성 백혈병이나 재생불량성 빈혈 환자에게 필요한 혈소판 보유량도 A형을 제외하곤 모두 하루 소요량 미만이다. 이날 적십자사의 적혈구 총 보유량은 6909팩으로 하루 필요량(4808팩)을 간신히 넘었지만 적정 재고량(3만3656팩)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혈소판 부족은 더 심각해 전체 보유량(2754팩)이 하루 소요량(3335팩)에도 미치지 못했다.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 관계자는 "매일 최악의 혈액 재고 부족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고 말했다.

사상 유례없는 혈액난은 감사원(3월)과 검찰(7월)의 잇따른 발표로 적십자사의 혈액 관리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난 게 결정적 원인으로 꼽힌다. 게다가 전체 헌혈량의 각각 43%, 30%를 차지하는 학생과 군인의 헌혈이 방학과 휴가철을 맞아 크게 준 것이 겹쳤다.

이에 따라 각 병원의 수혈용 혈액 보유량이 급격히 줄어들어 진료에 차질을 빚고 있다.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필요한 혈액량의 25~50%만 확보하고 있다. 특히 O형 적혈구는 이 병원에서 하루 평균 80팩을 사용하지만 3일 현재 가진 것은 20팩뿐이다. 또 A형 적혈구는 하루 필요량이 100팩인데 남은 것은 50팩이다.

강남성모병원도 혈액이 모자라 현재 수술환자에게만 수혈하고 있으며, 빈혈.암 등으로 혈액 공급이 필요한 환자에겐 수혈을 미루고 있다. 병원들은 본격적인 혈액난이 시작된 지난달 초부터 혈액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한달이 지나도록 혈액 부족 현상이 계속 악화하자 병원들은 직원들에게 헌혈을 독려하거나 홈페이지.병원 게시판 등에 헌혈을 호소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병원들은 또 직접 헌혈차를 운영하게 해달라는 요구까지 하고 있다.

적십자사 관계자는 "감염 혈액 유통 사건 때문에 헌혈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된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그로 인해 환자들이 피해를 봐서야 되겠느냐"며 "헌혈에 적극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보건복지부는 혈액 부족 사태와 관련,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헌혈캠페인을 벌이도록 할 계획이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사진=오종택 기자<jongta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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