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협력사 하나둘 쓰러질 때…위기의 부품업체 구한 KOTRA 직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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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쌍용자동차와 거래하다 쓰러진 호주 변속기 업체 정보를 KOTRA 현지 무역관 직원이 신속·정확하게 파악하고 거래 유지를 위한 협상까지 대신 나서 국내 부품업체의 120억원대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울산광역시 온산국가산업단지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인 동남정밀은 2006년부터 호주 변속기업체 DSI에 부품을 공급했다. DSI는 국내의 쌍용차와 미국의 포드 등에 변속기를 납품하는 업체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약 1500억원)의 절반 이상을 쌍용차에 의존하고 있었다. 쌍용차의 신차 C200에 장착되는 ‘전륜 6속 자동변속기’도 개발 중이었다. 동남정밀도 이 변속기에 필요한 부품 개발에 나섰다.

그런데 쌍용차가 어려워지면서 호주의 DSI뿐만 아니라 국내의 동남정밀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지난해 9월께부터 DSI로부터 받아야 할 납품대금이 지연되기 시작했다. 동남정밀의 이광표 사장은 처음엔 ‘자금 사정이 어려운가 보다’ 생각은 했지만 DSI와는 수년간 거래로 쌓인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지난해 12월 호주를 찾았다. 먼저 KOTRA 호주 멜버른무역관에 들렀다. 동남정밀은 호주 업무는 주로 현지 무역관의 지사화서비스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지사화서비스란 중소업체들이 KOTRA에 일정액(한 해 360만원)을 내고 해외 정보와 통역·업무처리 지원을 받는 제도다.

그런데 당시 이 사장은 멜버른무역관 지사화서비스 담당인 이동명(47·사진) 팀장으로부터 DSI 사정을 듣고 깜짝 놀랐다. DSI의 재무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나쁘다는 설명이었다. 이 사장은 DSI로부터 받을 납품대금 25억원이 있었다. 또 DSI에 납품하기 위한 부품 개발투자 100억원도 날릴 판이었다.

DSI가 쓰러지면 동남정밀은 한 푼도 건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부품 공급대금은 담보 채권자와 종업원 임금에 밀리기 때문이다. 결국 DSI는 올 2월 파산보호를 신청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5월에는 중국의 지리(吉利)자동차가 이를 인수했다.

당시 이 팀장은 현지에서 이 사장에게 수시로 DSI 상황을 전해줬다. 이 사장은 “내가 호주에 갈 수 없을 때는 이 팀장이 뛰어난 영어실력과 회계지식을 바탕으로 DSI·지리자동차와 협상장에 대신 참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호주 회계사 자격증이 있다.

지리자동차를 상대로 한 협상전략도 함께 세웠다. 지리자동차가 DSI를 인수하면서 납품업체들을 바꾸려는 움직임까지 포착됐다.

이 팀장은 지리자동차와의 협상에서 “세계 시장을 겨냥한 새 변속기 개발은 중단할 수 없지 않으냐. 동남정밀은 이미 100억원 넘게 투자해 관련 기술을 개발해왔다. 이 회사와 거래를 끊으면 지리자동차도 손해다”라는 논리를 폈다. 이런 전략은 먹혔다. 6월 말에 동남정밀은 변속기 개발을 계속 진행한다는 조건하에 지리자동차로부터 미수금을 모두 받았다. 변속기 개발에 들어간 100억원도 날리지 않게 됐다.

이 사장은 지난달 중순 KOTRA 조환익 사장에게 ‘멜버른 무역관 특히 이동명 팀장의 노력 덕분에 회사가 어려움에서 벗어나 너무 감사하다. 수출로 보답하겠다’는 편지를 보냈다.

염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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