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회사채 발생제한은 '무리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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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금융감독위원회가 이달중 5대그룹의 회사채 발행물량을 인위적으로 제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달 들어 회사채 발행시장의 80% 이상을 5대그룹이 독식하다 보니 나머지 대기업과 중소기업에도 자금이 흘러가기를 바라는 정부의 고육지책으로 생각된다.

과연 그 많은 자금이 필요하냐, 경제가 불안하니 닥치는대로 자금을 확보하고 보자는 것 아니냐 하는 비난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투신 펀드들 대부분의 5대그룹 회사채 편입비중이 높아, 아니할 말로 이들중 하나가 넘어질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침은 근거도 없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첫째, 금리가 떨어지다 보니 자금운용이 마땅치 않은 기관투자가들이 자발적으로 5대그룹을 제외한 대기업 또는 중소기업 발행 채권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이런 시점에 시장을 왜곡시키면서 정부가 나설 이유는 없다.

둘째, 이미 5대그룹 발행 어음 (CP) 편입비율을 제한한 마당에 다시 회사채 발행을 제한하면 이들의 자금사정이 어려워지고 해당 협력업체들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정부의 경기활성화 노력과도 맞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크게는 시장원리, 작게는 규제완화라는 흐름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순리로 풀지 않고 옛날로 돌아가는 꼴이다.

투자가들이 높은 금리에도 투자부적격채권을 사지 않는 이유는 '안전으로의 도피' 현상 때문이다.

5대그룹 회사채 발행을 제한하더라도 부적격채권을 강제로 사게 할 수는 없다.

지급보증이 없어진 터에 부도율이 높은 채권을 편입할 리가 없다.

더욱이 지금은 금융기관의 감원이 진행중이고 투자운용에 대한 책임문제가 불거진 상황이 아닌가.

오히려 일부에서 나도는 소문대로 부적격채권을 사주는 대가로 고액의 뒷돈을 요구하는 비리를 조장할 가능성마저 우려된다.

그러면 바람직한 해결책은 무엇인가.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위험을 적절히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위험도에 따라 금리의 높낮이가 결정되는 시장을 허용해야 한다.

위험이 아주 높다면 20%, 또는 그 이상의 금리도 허용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IMF 하에서 지향해야 하는 선진금융의 모습일 것이다.

권성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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