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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경제학자가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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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대통령이라고 경제 발언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오히려 많은 정보가 모이는 자리에 있는 만큼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귀 기울이는 이도 많을 것이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거시경제에 대해 말하곤 한다. 지난달 말엔 “지금 경기침체의 끝자락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며 낙관론을 폈다. 그러나 대통령의 출구전략 언급에 관해선 좀 따져볼 게 있다. 연일 오르는 증시나 일부 경제지표만 보면 분명 경제가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 일부 지역의 폭발적인 전셋값 오름세를 보면 과잉 유옘봉� 부작용도 벌써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정부가 선심 쓴 돈으로 한껏 잔치를 벌였을 뿐이며, 이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기는 힘들다는 분석도 많다.

출구전략은 이런 경기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야 하는, 고도의 기술적인 판단이 필요한 일이다. 아직 전문가들도 결론을 못 내는 부분까지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교통정리’를 하는 건 모양새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한국은행 총재는 대체 왜 있는가. 대통령의 묵직한 언급이 출구전략 논의의 ‘출구’마저 봉쇄한다는 비판(김상조 한성대 교수)은 충분히 나올 만하다. 당장 다음 주 통화정책 방향을 설명해야 하는 한국은행이 자못 부담을 느낄 것 같다.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현지 동포와 간담회를 하면서 “지금 주식을 사면 최소 1년 이내에 부자가 된다”고 말해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당시 야당은 “도박사나 할 말”이라고 비판했고, 언론도 “주가와 같은 불확실한 미래를 그렇게 확실하게 얘기하기엔 대통령의 자리가 너무 무겁다”고 꼬집었다.

최고경영자(CEO) 출신의 실물경제를 잘 안다는 대통령이니, 자신의 경제관을 설파할 실력과 의욕이 넘칠 것이다. 하지만 민감한 경제정책과 관련해선 가능하면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큰 그림을 보여주는 선에서 발언을 자제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밑에서도 순발력 있게 정책을 펼 수 있다.

경제학자 케인스는 대단한 현실주의자였다. 필요하면 예전 주장과 상반되는 말도 거리낌없이 하곤 했다. 오죽하면 “다섯 명의 경제학자에게 견해를 물으면 여섯 가지 다른 대답이 나오는데, 그중 둘은 케인스가 한 말”이라는 우스개까지 나왔을까. 왜 그렇게 변덕스러우냐는 비판에 케인스는 태연하게 응수했다. “나는 정보가 변하면 결론을 수정합니다만, 당신은 어떻게 합니까?”

달라진 정보에 맞춰 결론을 바꾸는 역할은 경제관료에게 맡기면 된다. 대통령까지 케인스의 ‘변덕’을 따라 할 이유는 없다.

서경호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