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이경숙씨 대형프로그램 잇단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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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후진 양성과 연주 활동을 병행하기 힘든 국내 음악계 현실에서 중견 피아니스트 이경숙 (54.연세대) 교수의 연주 작업은 유난히 돋보인다.

87년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전곡 연주를 시작으로 88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 89년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9곡) , 91년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소나타 (9곡) , 93년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3곡) 전곡을 차례로 연주해 국내 연주계에 전곡 연주의 붐을 일으켰던 주인공이기 때문일까.

그에게는 아카데믹하면서도 스케일이 큰 연주가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배어 있다.

전곡 연주는 각각의 작품들로 구성된 또 하나의 큰 작품을 연주하는 것으로 작곡가에 대한 철저한 탐구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이씨의 연주 활동은 올 가을 시즌도 예외가 아니다.

우선 오늘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10월 축제 개막공연에서 서울바로크합주단과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협주곡 제1번' 을 협연한다.

"트럼펫과 피아노의 대화가 돋보이는 매우 화려한 곡입니다.

초기 작품이라 체임버 오케스트라도 연주할 수 있는 편성이지요. " 28일에는 KBS홀에서 KBS교향악단의 명예지휘자로 추대된 원로 임원식씨와 베토벤의 '코랄 판타지 (합창환상곡)' 를 협연한다.

이씨는 42년전 당시 12살의 나이로 임씨가 이끄는 KBS교향악단과 협연했던 인연이 있다.

또 오는 30일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갤러리 콘서트에서는 10년전 장안의 화제가 됐던 프로그램으로 독주회를 갖는다.

베토벤의 3대 소나타로 불리는 '열정' '월광' '비창' 을 잇달아 연주하는 것. "색다른 프로그램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요. 그래서 조만간 바흐 전곡 연주에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

최근 들어 이씨의 활동 반경은 더욱 넓어지고 있다.

대형 기획 못지 않게 실내악.가곡 반주 등에도 눈을 돌리게 된 것. 이씨는 지난 2일 소프라노 석금숙 독창회에서 그동안 숨겨두었던 반주 실력을 발휘했다.

사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일종의 실내악 앙상블 같은 것이다.

30년전 커티스 음대 재학중 이씨는 아르바이트로 하던 성악가 반주에 매료돼 아예 피아노 코치로 나설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었다.

이씨는 올 겨울엔 '환상곡' 이라는 주제로 독주회를 가질 예정. 김청묵의 '판타지아' , 하르바흐의 '환상곡과 푸가' , 맥도웰의 '환상곡 작품17의 2' , 조아캥 투리나 (1882~1949) 의 '환타지아 이탈리아나' 등 평소에 자주 듣기 힘든 이색 프로그램과 함께 바흐의 '환상곡과 푸가' , 베토벤의 '환상곡' , 쇼팽의 '환상곡 f단조' 등을 연주할 계획이다.

환상곡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 분방한 악상을 펼쳐가는 음악. 고전과 형식의 탄탄한 기초를 쌓아올린 후에야 제맛을 낼 수 있는 레퍼토리들이다.

그만큼 이씨의 음악세계가 시적 (詩的) 인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는 얘기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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