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0 경기부양 대책에 담긴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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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경제를 살리겠다' 고 천명한지 이틀만에 정부의 후속대책이 나왔다.

'9.30 경기부양대책' 은 예상대로 '돈을 풀어 금리를 내리고, 세금을 깎아주는 게' 골자다.

금리인하는 정부의 거듭된 요청을 한국은행이 수용함으로써 진전을 보게됐다.

환매채 (RP) 금리를 8%에서 7%로 낮췄는데, 그동안 인하를 주저해오던 한은이 대통령의 의중을 읽고 결심했다는 후문이다.

미국의 금리인하도 결심을 부채질했다.

재정경제부는 6%까지 내려줄 것을 희망했으나 7%로 결론이 났다.

RP금리를 내리면 콜금리가 떨어지고, 이어 예금.대출금리가 차례로 하락하는 효과가 있다.

한은이 돈을 환수하지 않으면 콜금리가 3~4%까지도 떨어질 수 있다는 게 정부의 관측이다.

정부의 최종 목표는 대출금리 인하다.

지난 8월 현재 대출금리는 예금금리보다 5.3%포인트나 높은 비정상적 상황이다.

따라서 국제통화기금 (IMF) 이전 수준 (지난해 11월 2.5%) 으로 낮춰야겠다는 것이다.

재경부는 이날 은행 여신담당임원을 소집, 이같은 입장을 전달했다.

돈도 충분히 푼다.

본원통화 (25일 현재 18조7천억원) 를 연말까지 7조원 더 풀어 IMF와 합의한 25조6천여억원에 맞추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금이 돌지않는 신용경색 현상이 당장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정건용 (鄭健溶)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은 "대출금리는 4분기에 본격적으로 떨어질 것" 이라며 "그러나 신용경색은 점진적으로 해소될 수밖에 없다" 고 말했다.

재정을 동원해 은행의 국제결제은행 (BIS) 자기자본 비율을 10% 이상으로 맞춰줘도 기업구조조정이 계속되고 있어 자금 흐름이 원활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기업의 생존여부가 더 분명해지기 전까지는 금융기관이 돈이 있다 해도 선뜻 빌려주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 시점을 '내년 초께' 로 보고 있다.

아무튼 '돈을 풀어 금리를 내리는' 부양책은 점차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비해 '세금을 깎아주는' 부양책은 아직 미흡한 것 같다.

임시투자세액공제를 컴퓨터 등 서비스업으로 확대하는 것이 그나마 새로운 내용이다.

그동안 검토돼온 양도소득세.특별소비세 감면은 일단 빠졌다.

재경부 관계자는 "계속 검토중" 이라고만 말했다.

정부는 감세 (減稅) 이후 세수 (稅收) 만 구멍나고, 경기는 살리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 을 우려해 선뜻 결심을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실물경제의 붕괴를 막아야겠다면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찔끔찔끔하다가는 면역성만 생기고, 국민의 불안한 심리를 돌려놓기에도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그랬다.

따라서 그동안 나온 부양책에다 몇가지를 더 얹어 나열하기보다 한가지를 하더라도 '양도세 한시 면제' 라든지 '대기업 저리 무역금융 허용' 처럼 파격적으로 해야 정부의 경기부양 의지도 분명히 보여주고, 국민도 불안을 덜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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