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막오르는 '경주문화엑스포'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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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세계의 고도 (古都) 경주에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엑스포, 문화의 가치로 세상을 읽는 세계문화엑스포가 11일부터 11월10일까지 두달간 펼쳐진다.

문화엑스포 형식으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이번 경주엑스포의 의의에서 관람 안내까지 한자리에 모았다.

엑스포 (Expo) 는 '산업' 박람회를 뜻했다.

대량생산으로 상징되는 산업혁명의 시발지 영국이 미래 산업사회에 대한 자신감을 등에 업고 1850년대 영국에서 처음 선보인 것이 엑스포였기 때문이다.

지난 93년 열렸던 대전엑스포는 물론이고 매년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엑스포는 어떤 주제를 내세우든지 결국은 산업사회 신 (新) 발명품을 선보이는 경연장이 돼왔다.

하지만 산업주의는 20세기말에 이르러 한계를 드러냈다.

생태계의 붕괴, 인간성의 파괴 등 절망적인 상황은 산업주의에 대한 회의로 이어졌고 이는 새로운 세기적 가치를 요구하고 있다.

20세기의 패러다임인 '산업' 을 대체할 21세기의 패러다임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문화' 이다.

따라서 미래사회의 지향점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엑스포의 개념도 이제 산업이 아닌 문화로 전환할 때가 됐다.

오는 11일 경주 보문단지 일대에서 막을 올리는 세계 최초의 '문화' 엑스포인 98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이런 의미에서 대단히 중요한 뜻을 지니고 있다.

변방 한국의 한 지역에 불과한 경주에서 열리는 지방자치단체의 행사를 넘어서, 동아시아문명의 결정체가 집약된 경주에서 세계를 향해 산업에서 문화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시동을 건다는 기대 때문이다.

결국 이번 문화엑스포는 지자체 수익사업의 하나로 기획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새로운 세기의 주도권을 잡아나가겠다는 의지가 결집된 한국의 밀레니엄 사업으로도 볼 수 있다.

문화엑스포라는 생소한 개념이 등장한 것은 지난 96년. 민선으로 95년 당선된 이의근 경북도지사가 문화지사를 표방하면서 경북의 문화육성을 위한 대규모 이벤트를 추진한 것이 첫 단추가 됐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조직위원장인 이지사는 당시 "경북은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천년 고도 (古都) 경주를 아우르고 있는 지역인데도 문화가 제대로 육성이 안되어 있다" 며 "문화 경주의 부흥을 위한 전세계적인 문화축제를 만들겠다" 고 말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아이디어 뱅크인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고고학자 한양대 김병모 교수 등 문화계 인사들로 자문위원단을 구성해 방향과 개념을 협의한 끝에 오늘과 같은 문화엑스포 골격을 만들고, 지난해 4월 '새 천년의 미소' 라는 엑스포 주제를 확정했다.

여기서 미소는 곧 문화를 상징한다.

이번 엑스포 심볼로도 쓰인 그 유명한 통일신라시대 수막새의 은근한 미소, 반가사유상의 깨달음의 미소 등 신라인이 만들어온 지난 천년의 미소를 패러다임이 바뀌는 21세기를 눈앞에 둔 이 시점에서 차용해 인류 보편의 문화적 가치로 천년 후까지 이어가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어령 자문위원장은 "새로운 세기는 문화 패러다임으로 움직인다는 식의 세계 석학들의 분석은 많았지만 이를 가시화한 구체적인 이벤트는 단 하나도 없었다" 며 "세계 최초로 열리는 이번 경주 '문화' 엑스포는 엑스포의 개념을 산업에서 문화로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 이라고 내다봤다.

이교수는 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이번 경주문화엑스포는 IMF로 위축된 현 국내상황에 큰 파급효과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21세기를 끌어가는 문화 원동력이 될 것으로 믿는다" 고 덧붙였다.

인류 문명 4대 발생지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유물과 민속춤이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이번 경주문화엑스포는 단순히 저렴한 비용으로 세계풍물을 경험한다는 실리적인 차원을 벗어나, 성장일변도의 경제논리 대신 삶의 질을 높이는 문화적 가치를 제시하고 새로운 문화시장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보다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경주의 고유성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집안잔치가 아닌 세계인의 축제로의 보편성 획득이 이번 엑스포 성공의 관건이라 하겠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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